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이 지난달 말부터 집단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지만 의대 3곳 중 1곳에선 집단 사직서 제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집단 사직서 제출이 이뤄진 의대 중에는 참여율이 10% 남짓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그 동안 외부에는 “병원을 떠날 수 있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두드러졌지만 교수 상당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떠난 병원을 지키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 의대 40곳 중 15곳 사직서 미제출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40개 의대 중 최소 15곳(37.5%)은 교수 단체에서 대학본부나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사직서 제출은 교수 단체에서 사직서를 모아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15곳 중 14곳은 교수협의회 등에서 사직서를 취합했지만 실제로는 대학·병원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 가톨릭대 의대는 교수협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사직서를 취합했지만 9일까지 대학·병원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 중앙대 한양대 등도 마찬가지였다. 취합한 사직서를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서울의 한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최대한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했다. 가천대 의대의 경우 아예 교수 단체에서 사직서 취합도 하지 않았다.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참여율이 낮은 곳도 있다. 제주대 의대 관계자는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는 전체 교수(153명) 중 10% 수준인 10여 명”이라며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 중에서도 실제 병원을 떠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 “응급실 지켜야…집단 사직 부적절”교수 사직서 제출은 전국 의대 20곳 교수들이 모인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에서 지난 달 16일 “25일부터 의대별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의대 전체 40곳 교수들의 모임인 전의교협에선 물론, 전의비 내부에서도 “교수까지 떠나면 안 된다”며 사직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의대에서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사회적 혜택을 받아 교육자가 됐으니 사회적 책무가 있다”며 “의대 증원에는 반대하지만 사회적 이슈 때문에 사직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인하대 응급의학과의 한 교수는 “제가 나가면 다른 누군가는 응급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교수협의회가 사직서를 취합할 때 안 냈다”고 했다. 일부 교수들은 “의사가 집단행동에 참여할 경우 대중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필수·응급의료 서비스와 치료가 계속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는 세계의사회 권고에 따라 병원을 비우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 “의대생 유급-전공의 면허정지 땐 제출”다만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교수협이나 교수 상당수는 전공의 면허 정지나 의대생 집단 유급이 현실화되면 사직서를 내겠다는 분위기다. 오세옥 부산대 의대 교수협회장은 “전공의 면허정지나 의대생 유급이 이뤄지면 ‘마지막 카드’로 취합된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법정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현재 의협을 이끄는 ‘대화파’ 김택우 비상대책위원장과 다음 달 취임하는 ‘강경파’ 임현택 차기 회장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9일 비대위원장 자리를 넘기라는 임 차기 회장의 요구를 거절하며 “대내외적으로 비대위를 흔들려는 시도가 있는데 비대위 활동은 4월 30일까지”라고 했다. 임 차기 회장의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의협은 또 조율된 입장을 밝히겠다면서 예고했던 12일 합동 기자회견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