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차단” 환경부-지자체, 울타리 설치 확대… 정작 천연기념물 산양 이동 막아 5개월 동안 537마리 폐사… 돼지열병은 부산까지 퍼져 “백신 개발 등 대안 찾아야”
올해 2월에는 근래 보기 드문 대설이 연이어 찾아왔다. 2월 중순부터 3월 초 강원 북부 접경지역 주민과 타지에서 방문한 사람들은 마을과 도로변에서 풀이나 키 작은 나무의 잎을 뜯어 먹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산양’을 너무나 쉽게 발견하곤 놀라워했다. 산양은 천연기념물과 1급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된 국가법적 보호 희귀 야생동물로 평소에는 깊은 산중으로 가지 않으면 여간해선 만나기 어려운 존재다.》
2023년 2월 강원 인제 미시령에서 촬영된 천연기념물 산양. 대설이 내린 뒤 먹이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왔지만 ASF 방역울타리에 가로막혀 더 이동하지 못한 채 서 있다. 야생동물들은 방역울타리를 넘으려다 날카로운 철사에 긁혀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한상훈 소장 제공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2019년 9월 16일 경기 파주 양돈농가에서 최초로 국내 ASF가 발생하자 정부의 초기 대응은 야생 감염 멧돼지가 양돈농가로 ASF를 퍼뜨리는 걸 차단하기 위해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에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 방역울타리를 설치하고, 야생 멧돼지를 집중적으로 포획하여 개체 수를 급감시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전국의 야생 멧돼지 포획 건수는 5배로 급증했다. 마리당 30만∼50만 원의 포획장려금도 지급되었다. 지금까지 방역울타리 설치와 멧돼지 포획장려금 지급에 쓴 예산도 1조 원을 가볍게 넘는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상황은 달랐다. 2023년 12월 부산 도심 산에서 ASF 감염 멧돼지 사체가 발견되면서 관리와 차단에 문제점이 없다던 환경부 입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방역울타리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민원도 그치지 않고 있다. 도로와 하천에 이중 삼중 설치되어 있는 등 주민 안전을 위협하고 불편하며, 심지어 마을 앞을 지나며 설치된 방역울타리가 관리 소홀로 풀로 덮여 있고 파손된 울타리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등 마을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내용이다.
더 큰 문제는 멧돼지 이외의 국가보호 야생동물 산양의 이동을 막는 등 생태통로를 차단하고 있는 점이다. 방역울타리의 구조도 위험하다. 철사가 그대로 뾰족하게 위에 드러나 있어 자칫 야생동물이 뛰어넘다가 실수로 방역울타리에 부딪히면 그대로 살이 파이고 열상을 입을 위험성이 매우 높다. 실제 도로로 나왔다가 차량에 놀란 고라니가 방역울타리를 넘다 노출된 뾰족한 철사 끝에 찔려 상처를 입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처럼 방역울타리는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더욱 조장하기도 한다.
2023년 1월 전국 최초로 인제군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ASF 방역울타리 관내 전수조사를 하여 문제지역 13개소 8.7km를 1차 철거 대상 구간으로 선정하고 구체적 철거 방법을 논의한 뒤 환경부에 요청하였다. 현재 인제 관내에는 환경부가 95억 원을 들여 직접 설치한 212km의 광역 울타리와 인제군이 국도비 35억 원을 투입해 설치한 2차 울타리 71km 등 283km의 방역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에서 방역울타리 철거와 발생지역 관리를 재설정하는 안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순간까지 방역울타리가 철거된 지점은 없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