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4주년] [신성장엔진 아시아 뉴7]〈4〉 싱가포르 자원 허브 삼은 SK 전자폐기물 분쇄, 배터리 원료 추출… 中서 조달하던 소재 공급망 다변화 글로벌 車업체들과 ‘자원 순환’ 협업 싱가포르, 美와 FTA… 보조금 혜택 ‘도시광산’ 놓고 한중일 경쟁 가열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싱가포르에 있는 SK 테스 B공장에서 작업자들이 폐배터리에 대한 화학적 작업을 하고있다. SK 테스 B공장은 전기차 폐배터리를 수거해 파쇄한 뒤 화학 처리를 거쳐 리튬과 코발트, 흑연 등을 추출해내는 작업을 한다.
“저기 쏟아져 나오는 검은 가루 보이시죠? 저기에 배터리 원료로 쓰이는 희귀금속들이 포함돼 있어요. 이 공장을 ‘도시광산’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싱가포르 서부에 있는 전기·전자 폐기물 재활용 전문 기업 SK 테스(TES) 공장. 오종훈 최고전략책임자(CSO·부사장)가 관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검은색 가루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가루는 ‘이웨이스트(E-Waste)’라고 불리는 전기·전자 폐기물을 분쇄한 것이다. SK 테스는 도시에서 배터리 원료 등 광물을 채굴하고 있었다.
● “중국에 대한 자원 의존도를 낮춰라”
배터리 소재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점도 테스 인수에 영향을 미쳤다. SK온을 비롯해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리튬과 코발트, 흑연 등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흑연의 중국 의존도는 약 90%다. 이런 구조에선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해 수출 통제에 나서면 곧바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오 부사장은 “SK 테스에서 얻은 금속들은 SK온과 협력하고 있는 배터리 소재 업체들에 공급한다”며 “아직은 초기 단계라서 공급량이 많지 않지만 SK 테스 공장 가동을 늘릴수록 자체 조달 금속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테스가 있는 싱가포르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라는 것도 이점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FTA 체결국인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지는 광물이 미국 전기차에 사용되면 각종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근 SK 테스는 볼보자동차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독일의 유명 자동차 업체들과 폐배터리 수주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완성차 업체들과 희귀금속 제공 계약도 함께 맺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SK 테스 측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폐배터리 처리와 희귀금속 회수를 동시에 원하는 추세”라며 “이런 자원 순환 생태계를 갖추면 배터리 제조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오 부사장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전담하는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은 아예 테스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놨다.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면 담당자가 곧바로 관련 지원 및 정책을 검토해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며 “심지어 공무원이 동종 기업인들 모임을 만들어서 교류하게 한다. 모임을 통해 신규 투자도 이끌어 낸다”고 말했다.
이웨이스트 가공 사업을 하려면 ‘바젤 퍼밋(Basel Permit)’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바젤 퍼밋은 배터리 및 전기·전자 폐기물 등을 다른 나라로부터 받아오기 위해 필요한 국제 허가다. 아시아에서 바젤 퍼밋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나라는 싱가포르와 한국, 일본 정도다. 테스는 애초 싱가포르 기업이어서 현재 약 30개국으로부터 바젤 퍼밋을 확보했다.
● 뜨거워지는 한중일 도시광산 경쟁
한국은 폐기물 처리 사업을 하던 일부 중소기업이 도시광산에 관심을 가지는 수준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다 보니 국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지만 폐기물 처리 기업들이 국내 배터리 기업들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은 사정이 복잡하다. 중국 내부에는 여러 폐기물 재활용 기업이 있고 규모도 크다. 하지만 중국은 바젤 퍼밋 요건을 갖추지 못해 중국 밖에서 전기·전자 폐기물을 가져올 수 없다. 중국 내부에 있는 폐기물만 처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김희영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한국은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력에서 앞서 있다. 해외에서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폐배터리 재활용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면 자원 공급망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배터리 산업 가치사슬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