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니콜라 부리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시를 만드는 것과, ‘팔기 위해’ 전시를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맥도날드와 훌륭한 맛집(good gastronomic restaurant)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맛집은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죠. 남들과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죠.”올해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프랑스 출신 유명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를 만났습니다.
‘관계의 미학’ 등 저서로 국내 미술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론가이자 파리의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의 공동 설립자로 기관장을 지냈습니다.
최근 10년간은 이스탄불 비엔날레, 타이베이 비엔날레 등 유럽 밖 지역에서도 전시 감독을 맡으면서 ‘비엔날레 전문 큐레이터’라는 인상도 받곤 합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광주까지 오게 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참여 작가를 발표하면서 전시의 대략적 윤곽도 공개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단어 자체에 주목한 주제, 판소리
미미 박, ‘Shining Us’(가제), 2024. 뉴욕 스위스 인스티튜트 설치 전경. 사진: 미리아-사비나 마시아지에윅
우선 그가 전시의 큰 틀로 생각했던 것이 ‘사운드스케이프(소리의 풍경, soundscape)’였는데, 이 단어의 의미가 마침 판(공간)과 소리가 결합한 ‘판소리’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 주제 선정에 가장 큰 요인으로 보입니다.
즉 물리적인 틀이 아니라 우리가 귀로 듣는 여러 가지 소리도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기본 토대입니다.
그에게 “전시를 기획할 때 판소리의 형식보다 이름 자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맞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 판(공간)과 소리가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정했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흔히 판소리라고 했을 때 우리는 북을 치는 고수와 함께 소리꾼이 노래하는 ‘극’의 풍경을 떠올립니다. 이런 극의 형태와 전시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부리오의 답입니다.
“판소리는 고수와 소리꾼으로만 구성되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오페라라고 생각한다. 그 형태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목소리와 악기,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다르지 않다.”
이는 결국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판소리의 독특한 양상이 전시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되었습니다.
내용은? 기후 변화, 국경 분쟁,…
맥스 후퍼 슈나이더 ‘트랜스퍼 스테이션, 해머 프로젝트’(2019). 해머뮤지엄 전시 전경. 사진: 작가 및 소속 갤러리 제공
우선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섹션, 1) 라르센 효과(Larsen Effect, 두 음향 기기가 너무 가까워서 나는 굉음) 2) 폴리포니(Polyphony, 다성음악) 3) 원초적 소리(Primordial Sound)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마치 도시처럼 너무 많은 것들이 한 곳에 놓인 밀도 높은 공간을 제시하고, 그다음은 다층적 세계관에 주목하는 작가를, 그다음은 분자와 우주를 탐구합니다. 좁은 곳에서 시작해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구성인데요.
첫 번째 영역을 고밀도의 공간으로 구성한 이유에 대해 부리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기후 변화의 가장 눈에 띄는 결과거든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는 숲이 사라지고, 또 야생 동물이 인간과 접촉하면서 신종 전염병이 생기기도 하죠.
에베레스트산을 올라도 사람의 흔적이 있잖아요. 야생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지금의 현상을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기후 변화가 일으킨 지구라는 공간의 변화, 또 국가 간 정치적 상황으로 발생하는 경계와 분쟁, 여기서 소외되는 다른 형태의 생명체들의 목소리 등이 전시의 주제가 될 듯합니다.
“똑같이 손님 많아도 맥도날드와 맛집은 달라”
비앙카 본디, ‘별의 연못에서 점치다’(2024). 사진: 라 카사 엔센디다 - Ph. 마루 세라노 제공
지금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 필립 파레노나 미술관에서 함께 밥을 지어 먹는 프로젝트를 선보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같은 작가처럼 참여 형태의 예술로 관객을 끌어들였고, 대표 저서인 ‘관계 미학’에서도 이런 예술을 모범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리오는 “나는 항상 일반 대중(general public)을 위해 전시를 만든다”라며 자신이 기획했던 리옹 비엔날레를 찾은 50만 명도 전혀 미술계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글을 재료로 하는 신문 기사는 언어를 모르면 읽을 수 없지만, 작품은 시각 언어로 보면 되는 것이기에 더 보편적으로 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작품은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파급력이 더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각 언어’를 보는 것에도 타고난 감각이나 훈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부리오에게 “어떤 큐레이터들은 너무 일반 대중에 집중하다가 전시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시를 만드는 것과, ‘팔기 위해’ 전시를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장 많은 티켓을 파는 데에 관심이 있기도 하죠. 맥도날드와 훌륭한 맛집(good gastronomic restaurant)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맛집도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들은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죠. 남들과는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올해 광주에서는 맥도날드가 아니라 훌륭한 맛집 같은 전시를 볼 수 있을까요? 30개국 73명 작가가 참여한 ‘판소리, 모두의 울림’. 9월 7일 개막하면 그 결과를 알 수 있겠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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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