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이런 대화를 할 수밖에 없어요. ‘(콜레라 백신을) 아이티로 보낼까요, 시리아로 보낼까요? 아니면 짐바브웨?’”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전한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의료 코디네이터의 한탄이다. 최근 수년간 아프리카 등에서 콜레라가 대규모로 확산한 가운데 국제 의료구호 단체들이 모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예방 백신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수천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지원처 선별을 해야 하는 탓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1년 22만여 명까지 감소했던 세계 콜레라 감염자가 이듬해 47만여 명으로 늘었다. 콜레라는 카리브해 연안과 중동, 남아시아 등에서 급속히 확산했다. 케냐의 소말리아 난민촌 어린이들 사이에서, 내전으로 기반 시설이 파괴돼 강물을 마셔야 하는 시리아에서, 무정부 상태가 된 아이티에서 창궐했다. 특히 최근 2년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맹위를 떨쳐 7개국에서 집계된 것만 4000여 명이 숨졌다. 백신도 동이 났다. 전쟁으로 콜레라 발생 소지가 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공급할 백신마저 없는 실정이다.
▷현재 콜레라 백신을 생산하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기업이 한국의 유바이오로직스다. 인도의 회사가 한 곳 더 있었는데, 지난해 생산을 중단했다. NYT에 따르면 유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생산 단계와 성분을 간소화하는 한편 제2공장 가동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올해부터 백신 수천만 회분을 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엔의 지원을 받는 국제백신연구소(IVI)의 줄리아 린치 박사는 이 회사를 두고 “(콜레라 대응의) 숨은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뒤늦게 인도와 남아공의 회사 세 곳이 백신 제조에 뛰어들었지만 빨라야 내년 말부터 제품이 나온다.
▷수인성 질병인 콜레라는 부유한 나라에선 거의 유행하지 않는다. 빈국의 전염병이다. 최근 극단 기후 탓에 가난한 나라의 국민은 홍수로 상하수도 시설이 파괴되거나 가뭄이 들어 깨끗한 마실 물도 모자란 상황이다. 콜레라 백신은 당분간 공급이 달릴 것으로 전망되지만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별 관심이 없다. 개당 수 달러에 이문도 적은 탓이다. 그 결과 콜레라와의 전투에서 승부가 사실상 한국의 한 중소기업에 달린 형국이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