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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후원자” vs “미국같은 사탄”…이스라엘-이란은 왜 원수가 됐나

입력 | 2024-04-14 17:08:00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4일(현지시간) 열린 반이스라엘 집회에 참가한 한 운전자가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이란이 13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을 향해 무인기(드론)과 미사일을 대거 발사해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면서 양국이 숙적이 된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거대한 사탄’인 미국에 이은 ‘작은 사탄’”이라고 부르는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에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후원자”라고 칭한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원래 사이가 원만했다. 이란 팔레비 왕조는 친미 성향으로, 미국과 가까운 이스라엘에도 우호적이었다.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포했을 때 이란은 이슬람 국가 중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독립 국가로 인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란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슬람 지도자로 꼽히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0∼1989)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일으키며 두 나라는 돌아섰다.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를 촉출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불법으로 점령했다고 봤고, 이스라엘과 단교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패하고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이후에 중동의 권력이 이란과 이스라엘로 옮겨가며 양국의 갈등은 더 첨예해졌다. 1992년 이스라엘 대사관 앞 폭탄 테러로 29명이 숨졌고,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 건물에서 발생한 테러로 85명이 숨졌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면서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는 더 악화했다.

2005년 이란의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갈등이 더 커졌다. 선거운동 기간 ‘1979년 이란혁명의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던 그는 강력한 이슬람 사회 건설을 주장했고,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비판했다. 이란 핵 과학자 여럿이 암살됐고, 2010년 악성 컴퓨터 코드 ‘스턱스넷’이 침투해 핵 시설 원심분리기 기능이 손상됐다. 이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을 때 이스라엘은 전적인 지지를 표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