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변신의 이유

변신의 원인은 다양하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문제 해결을 위해, 정체성을 찾기 위해, 혹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변신한다. 그리스 신화 속 다프네는 아폴로의 구애를 피하기 위해 월계수로 변신한다. 이탈리아 화가 아고스티노 베네치아노의 1518년 판화 작품 ‘아폴로와 다프네’. 사진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템페스타의 1606년 동판화 ‘플레이트 98: 아도니스의 변신’. 사진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
프랑스 화가 장 미뇽의 동판화 ‘악타이온의 변신’. 사진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
변신에 대해 유독 깊이 탐구한 한국의 예술가가 김범이다. 김범이 보기에,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인간이 될 수 있다. 실로, 김범의 작품 세계 속에는 다양한 사물들이 인간이 되는 과정에 있다. 1995년 작 ‘임신한 망치’에서는 망치가 임신을 한다. 1994년 작 ‘기도하는 통닭’에서는 통닭이 기도를 한다. 2006년 작 ‘잠자는 통닭’에는 잘 익은 통닭 한 마리가 잠들어 있다.
김범의 작품 세계 속에서 인간 역시 다양한 사물로 변하는 과정에 있다. 그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 아티스트북 ‘변신술’(1997년)이다. “이 책은 기존의 자연물과 인공물 가운데 기본적인 예가 될 수 있고, 응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골라, 필요에 따라 그것으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기술한 지침서이다.” 그리하여 ‘변신술’은 인간이 나무가 되는 법, 문이 되는 법, 풀이 되는 법, 바위가 되는 법, 냇물이 되는 법, 사다리가 되는 법, 표범이 되는 법, 에어컨이 되는 법을 차분하게 안내한다. 이 다양한 리스트에 분명히 빠져 있는 것은 ‘신이 되는 법’이다. 신을 닮아가고자 한 인류 문명의 오랜 시간을 떠올릴 때, 이것은 의도적인 누락으로 보인다. 김범이 보기에, 인간의 변신은 그저 “주변 환경을 활용하여 생존율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에 불과하다. 변신은 변신일 뿐 초월이 아니다.
이 변신이라는 주제를 천착하게 되면, 이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김범의 2007년 작 ‘10개의 움직이는 그림들’에는 풀 뜯는 기린에 대한 것이 있다. 여러 마리 기린이 나란히 서서 높이 달린 나뭇잎을 뜯어 먹는 장면이 먼저 나온다. 그런데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기린은 입이 나뭇잎에 닿지 않아 먹을 수 없다. 어쩌면 좋은가. 생물로 태어난 이상, 뭔가를 먹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나 모종의 원인으로 인해, 먹는 본능을 채우지 못할 경우 그 본능은 그냥 사라지는 것일까. 나뭇잎에 입이 닿지 않던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기린은 그냥 먹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다음 장면을 보자. 나뭇잎이 높아 먹을 수 없었던 기린은, 표범이라는 육식동물로 변신한다. 그리하여 나뭇잎 대신 옆에 있는 기린을 잡아먹으려 든다.
변신이란 주제를 염두에 두고 주변을 둘러보자.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있고, 성인에 가까운 사람도 있고, 괴짜 같은 사람도 있고, 온순한 사람도 있고, 사나운 사람도 있고, 괴물 같은 사람도 있다. 혹시 주변에 표범 같은 사람이 있는가? 분노로 가득한 사람이 있는가? 어쩌면 그는 자신의 기본적인 열망을 채울 기회를 찾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 마리 초식동물처럼 그의 열망은 그저 밥을 먹고 친구들과 오순도순 지내는 것이었는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그 평범한 길이 막혔을 때 그는 죽창을 들기도 하고, 한 마리 사나운 맹수로 변하기도 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