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 숙명여대-이준웅 서울대 교수 대담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운데)와 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오른쪽)가 1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김승련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진행으로 4·10총선과 여론조사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번 총선 여론조사를 통해 여당의 참패를 예상할 수 있었는지.
▽김영원 숙명여대 교수=총선 전에 더불어민주당이 꺼냈던 ‘200석 개헌선’까지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이유는 여론조사마다 ‘나는 보수’라는 응답자 비율이 평소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보수 유권자가 숨었다는 뜻이다. 이런 숨은 보수가 선거 당일에 나타날지 말지가 변수였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사전투표율 비교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했다. 2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될 때 사전투표율이 높았던 경북 포항 등지에서 이번 총선 때 그 숫자가 낮아졌다. 중앙선관위 250여 개 시군구 자료에 그게 들어있다.
―2월, 3월 여론조사를 보면 양대 정당의 승리 가능성이 요동쳤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등장과 민주당의 공천 파동 때 국민의힘 지지율이 크게 올랐을 때다. 어떻게 해석하나.
▽이=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1년 넘도록 30% 대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이 정도면 총선 승리가 쉽지 않다. 한동훈 등장 초기의 지지율 상승은 2012년을 연상시켰다. 한나라당이 임기 5년 차 이명박 대통령 대신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총선을 이겼던 그때 말이다. 그런 기대감이 생기면서 보수 지지층이 여론조사에 적극 응했다. 민심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여론조사에 적극적인 분위기가 생긴 게 (당시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2월 이후에는 의대 정원 확대, 이종섭 주호주 대사 출국, 대파 논란 등 쟁점이 여럿 등장했다. 어떤 사안이 영향이 컸을까.
▽김=특정 사안들이 표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정치적으로는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동의한다. 유권자마다 찬반 의견은 그때그때 있겠지만 영향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 여당에 악재가 등장하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 응답에 더 나서 대통령 정책에 반대한다고 답하게 된다. 정치 지도자가 지지층에 투표할 이유를 제공하느냐가 선거 승리의 요체다. 민심을 살피는 정치라는 것도 바로 이 이야기 아닐까.
―선거 여론조사의 정확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여론조사는 잘 작동했나.
▽이=조사가 너무 많다는 점은 지적해야 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전국 조사만 234회 진행됐다. 234개 가운데 전화면접 방식은 대부분 주류 언론이 의뢰한 것으로, 88개였다. 나머지는 인터넷 언론이 발주한 ARS 조사였다. 이 숫자는 지역구 조사 말고 전국 단위의 지지 정당 조사만 따진 것이다. 그런 만큼 유권자이자 뉴스 소비자는 조사 품질 기준에서 옥석 구별을 잘해야 한다.
―좋은 여론조사는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나.
▽이=높은 응답률이다. 몇 % 이상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높을수록 잘된 조사로 볼 수 있다. 면접 조사원이 직접 질문하는 방식은 예산이 더 들지만, 끊으려는 유권자에게 ‘잠시만요’라며 붙잡기도 한다. 이렇게 응답률이 높아진다. 조사원은 평소 교육도 받아야 하니 ARS보다 비용이 더 든다. 5, 6배로 알고 있다.
▽이=컴퓨터가 전화 거는 ARS 방식은 응답률이 매우 낮아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축적돼 있다. 결론이 나 있는 셈이다.
―품질이 낮다면 금지시킬 수는 있나.
▽이=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어서 금지는 곤란하다. 어찌 보면 자동화라는 게 혁신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이 ARS 조사는 가급적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터넷 매체가 보도는 하겠지만, 뉴스 독자들은 그런 조사를 마주하면 사람이 하는 면접조사보다는 신뢰를 덜 하고 보면 좋겠다.
▽김=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정치조사에 ARS를 규제하기도 한다. 워낙 텔레마케팅 회사의 로보콜을 많이 써서 상품 홍보를 많이 하니까 아예 금지시킨 주도 있다. 그 바람에 선거 여론조사도 ARS 방식은 응답할 패널을 미리 정해놓고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여론조사에 어떤 마음으로 답하나.
▽이=전화가 걸려올 때 응답하려면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현재 응답률은 전화면접은 13∼14%, ARS는 3∼4%다. 접촉이 된 응답자 100명 중 13명 안팎과 3명 안팎이 응답한 결과물이다. 조사에 응하는 사람들은 지지 정당 공개에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작다. 또 기다렸다는 듯이 답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 의견 표명 성향이 높은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응답률 표현 기준이 다르다. 3만 명에게 전화 걸어 1만 명이 전화를 받았고, 그 가운데 1000명이 답변을 끝까지 마친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때 우리는 접촉률(33%)-응답률(10%)로 표시한다. 미국에선 최종 응답률은 두 숫자를 곱한 3.3%가 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최종 응답률을 ‘성취율’ 등으로 표현하자는 의견이 있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슈지만 선거 1주일 전에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다.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김=과거엔 선거 앞두고 엉터리 조사 결과를 퍼뜨릴 우려가 있었다. 지금은 조사 방법을 함께 공개하니까 장난치는 게 쉽지 않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함으로써 선거 하루 전까지는 발표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
―왜 그렇다고 보나.
▽이=흔히 말하는 ‘깜깜이 기간’은 선진국 중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정도만 남아있다. 하지만 국회가 변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하루 전날까지 발표하도록 해야 엉터리 여론조사를 하는 회사들이 냉정한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럴 때 여론조사 품질이 더 좋아져 유권자에게 도움이 된다.
▽김=현역 의원들은 자기 선거구 도전자가 신인일 경우 마지막에 따라붙을 걸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1주일간 공표를 차단하면, 신인의 도전장을 받는 현역 의원이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론조사 기관의 정치적 편향성에 따른 여론 왜곡 문제는 없나.
▽김=특정 업체가 너무 많이 틀렸다는 점은 꼭 지적해야겠다. 이 업체는 언론사 의뢰 없이도 자기 예산으로 여론조사를 가장 많이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3월 25일 이후 이 업체가 실시한 비호남권 조사 27개를 전부 살폈는데, 실제 선거 결과와 비교할 때 단 1곳도 예외 없이 민주당 후보가 과다 추정됐다. 7곳은 당락이 뒤바뀌었는데, 모두 민주당 당선으로 잘못 추정됐다.
▽이=이런 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지지 정당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실제 투표할지 말지 행동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