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 ‘잊지 않은 사람들’] ‘단원고 2학년 3반’ 김도연의 일기
세월호 ‘단원고 2학년 3반 생존자’ 김도연 씨가 참사 10주기를 앞둔 9일 경기 파주시 운정호수 벚꽃길에서 일기를 적고 있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해도 안 가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냥 너무 화가 난다.”(2014년 5월 12일)
김도연 씨(27)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뒤 약 한 달 만에 처음 쓴 일기엔 방향 모를 혼란과 분노가 가득했다. 알 수 없었다. 왜 수많은 친구들이 희생됐는지, 정부는 어디에 있는지, 왜 만나는 사람마다 “어른들이 미안해”라며 사과하는지…. 여러 해가 지나도 그는 ‘단원고 2학년 3반 김도연’이었다.
도연 씨가 참사 이후 써 온 일기장 17권에는 재난 생존자로서 겪은 슬픔과 분노,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참사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재난 반복 않도록 내 할일 할것”
[세월호 10주기]
잊지 않은 사람들
“나도 모르게 자해… 폐쇄병동 입원, 단짝 무덤 다녀오는 길에 평온함
주변 이태원 참사 영상에 덜덜 떨어… 생존자 상처 안받게 역할 고민할것”
잊지 않은 사람들
“나도 모르게 자해… 폐쇄병동 입원, 단짝 무덤 다녀오는 길에 평온함
주변 이태원 참사 영상에 덜덜 떨어… 생존자 상처 안받게 역할 고민할것”
잠이 부족해 멍한 상태로 있다가 문득 손목에서 피가 흐르는 걸 발견했다. 다른 손에는 날카로운 학용품이 들려 있었다.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목을 숨겼다. 그러다 더 버틸 수 없게 됐을 때 처음으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자해에 쓰일까 봐 볼펜 반입이 금지돼 네임펜으로 일기를 썼다. 곧 상태가 나아져 퇴원했지만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매년 4월 16일 추모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대학에서 틈틈이 노란 리본 등을 주변에 나눠준 것도 죄책감의 영향이 컸다. 떠난 친구들에게 당당해지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대학 수업을 준비하느라 4주기 영결식에 참여하지 못한 2018년엔 일기에 “‘괜찮아. 발표였잖아’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몰려오는 죄책감이 너무도 크다. 미안해요, 모두들”이라고 적었다.
그는 왼팔에 참사 날짜인 ‘20140416’을 새겼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도연 씨의 불면은 잦아들다가도 다시 심해지곤 했다. 2021년 2월부턴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새로운 악몽이 시작되면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트라우마 증세가 나아졌다가 악화되면서 장기간 이어지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연 씨는 ‘시간이 약’이라는 믿음이 깨졌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해 4월 16일 일기에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한 탓일까. 시간이 지난 만큼 성장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적었다.
현재 이직을 준비하며 에세이 발간에 참여하는 등 세월호 관련 활동을 이어가는 도연 씨는 “제가 할 일이 더 명확해진 것 같아요. 만약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생존자가 저처럼 상처받지는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려고요”라고 말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