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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역사’ 전남 노둣길 살아나니 갯벌도 ‘생기’

입력 | 2024-04-16 03:00:00

2.5km 길이, 국내 최장 ‘징검다리’… 1998년 세운 포장 도로 없애며 부활
둑에 막혔던 바닷물 자유롭게 흐르자
낙지-칠게-짱뚱어 등 생태계 돌아와
신안군 “내년까지 갯벌 복원 마무리”



전남 신안군 암태도와 추포도를 잇는 노둣길.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만 길이 열리는 주민들의 소중한 교통로였다. 신안군 제공


“추포도에 살면서 옛 선조들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추포도는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 딸린 부속 섬이다. 본래 북쪽 포도(浦島)와 남쪽의 추엽도(秋葉島), 동쪽의 오도(悟島) 등 3개 섬으로 이뤄졌으나 1965년 간척으로 하나의 섬이 되었다. 서울 여의도의 약 1.4배(4.050km²)인 추포도에는 명물이 두 개 있다. 가는 모래로 유명한 추포해수욕장과 300년의 애환이 담긴 노둣길이다.

김성룡 추포도 이장(70)은 요즘 갯벌에 나가는 주민들이 많아졌다며 달라진 일상을 전했다. 김 양식과 염전, 농사일을 주로 하는 주민들이 갯벌에 자주 나가는 이유는 칠게와 낙지, 짱뚱어가 예전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김 이장은 “지난해 암태도와 연결된 시멘트 도로를 철거한 뒤 일어난 변화”라고 말했다.

신안군이 섬과 섬을 잇는 시멘트 도로를 해체하자 300여 년 전 선조들의 지혜가 녹아 있는 옛 노둣길이 드러나고 갯벌도 살아나고 있다.

노둣돌은 섬과 섬, 섬과 육지 사이에 크고 작은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를 말한다. 추포도와 암태도 사이는 갯벌로 메워져 있는데 조상들은 두 섬을 오가기 위해 3만6000여 개의 노둣돌을 놓았다고 한다. 길이는 무려 2.5k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1866년 노둣길 개·보수를 기념해 세워진 노도비(路道碑)를 통해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둣길은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만 길이 열리는데 해수 유통에 영향을 주지 않고 갯벌의 훼손을 최소화하며 갯벌을 이용하던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들어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1998년 차량 통행을 위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만들어졌다. 이후 노둣길은 갯벌에 흔적만 남아 물이 빠져도 보일 둥 말 둥 했다. 갯벌에도 생물 다양성 훼손이라는 문제가 생겼다. 시멘트 도로를 수면 높이로 설치한 탓에 바닷물 흐름을 막아 퇴적토가 쌓이기 시작했고 갯벌 생물 채취를 생업으로 하던 어민들도 격감했다.

신안군이 갯벌 생태계 복원 사업에 나선 것은 2021년 추포대교 개통이 계기가 됐다. 두 섬을 잇는 다리를 놓고 활용도가 떨어진 시멘트 도로를 해체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둑에 막혔던 바닷물이 자유롭게 오가며 둑 안쪽에 쌓인 흙이 쓸려 내려갔고 옛 노둣길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더 놀라운 건 갯벌의 최상위 포식자인 낙지와 낙지의 먹이원인 칠게, 갯벌의 정화자인 짱뚱어도 돌아온 것이다.

김 이장은 “중학생 때 이 길을 건너 통학했다. 현재 물이 빠지면 노둣길이 60∼70% 정도 보이는데 머지않아 옛 모습이 완전히 드러날 것 같다”며 “갯벌이 살아나고 있다는 게 확인된 만큼 올해 주민들과 꼬막 종패를 뿌려 볼 생각”이라고 했다.

신안군은 내년까지 암태∼추포 갯벌 복원 사업을 끝낼 계획이다. 지난해 갯벌에 쇠제비갈매기, 흑두루미 등 철새 쉼터인 자연석을 설치한 데 이어 매달 한두 차례 갯벌에서 해양환경공단과 함께 바다생물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노둣길 복원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안내판과 전망대도 설치할 예정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갯벌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만큼 탄소 중립의 이행을 위해 갯벌 복원 외에도 갯벌의 염생식물 군락을 복원하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안 갯벌은 2021년 7월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이라는 이름으로 전북 고창, 충남 서천, 전남 보성, 순천 갯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신안 갯벌 면적은 1100.86km²로 전체 유산 구역의 약 85%를 차지한다. 신안군은 2003년부터 등재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