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여론조사, 야권 우위 과대 추정 부동층 많은 수도권 지역서 특히 심해 ‘샤이 보수’ 못 잡아내 여론 왜곡 낳아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국민의힘(국힘) 참패로 끝난 총선 이후 여론조사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73억 원짜리’ 출구조사도 신뢰구간 상·하한을 기준으로 최소 3석(KBS)에서 최대 9석(MBC)까지 완전히 벗어났다. 방송 3사 신뢰구간의 중간을 기준으로 보면 10석 이상의 차이다. ‘저렴한’ 자동응답방식(ARS) 조사로 모든 지역구별 당선 확률만 추정하여 합산해도 그 수준의 예측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금년 1월 이후 실시된 총선 후보 지지율 조사 714건 중 국힘(또는 개혁신당), 그리고 민주당 후보가 1, 2위 득표를 한 161개 지역구에서 실시된 660건 전수를 분석해 보았다. 베이지언 계층모형(Bayesian Hierarchical Model)을 적용, 조사 모드(면접조사 대 ARS), 조사 시점, 지역 등의 요인을 고려한 후 후보 간 지지율 차이와 실제 득표율 차이 간의 차이를 추정해 보았다. 또 조사기관별 왜곡 정도도 함께 추정했다.
이번 총선에서 총 34개 업체가 지역구 지지율 조사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했다. ARS ‘박리다매’ 전략을 고수한 KSOI(75개·1위), 조원씨앤아이(66개·3위)와 지상파 3사 조사 용역을 수주한 한국리서치(73개·2위),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52개·5위), 그리고 방송인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꽃(56개·3위) 등이 ‘점유율’ 초상위권이었다.
특히 3월과 4월에 실시된 여론조사들에서는 이 과대 추정 정도가 그 이전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할 정도로 커졌다. 즉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기에 야권 우위를 특히 과대 추정한 것이다. 4월 여론조사 실시 지역구의 평균 득표율 차이는 3.4%포인트(야권 우위)로 초박빙이었다. 언론의 생리상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지역구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반면 해당 지역 여론조사 지지율 차이는 그 두 배가 넘는 7.5%포인트(야권 우위)였다. 실제로는 초박빙인데 여론조사에서는 거의 ‘끝난 게임’처럼 보였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유권자 신뢰가 높은 면접조사가 ARS보다 야권 후보 우위를 더 과대 추정한 것도 문제였다. ARS가 양극단 지지층을 과대 표집하여 ‘샤이 보수’가 적었던 것으로 해석 가능한데 고비용 면접조사의 가성비가 낮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또 부동층이 많아 여론조사가 유권자 표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도권 지역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할 정도로 야당 우위 과대 추정이 심했다. 특히 경기도 지역구에서는 평균보다 약 3.5%포인트 정도, 4월 실시된 면접조사들만 보면 무려 10.2%포인트 야권 후보 우위를 과대 추정했다. 가령 국힘의 안철수, 김은혜 후보가 6.5%포인트와 2.3%포인트 차로 승리한 성남시 분당갑과 분당을 지역구에서 4월 실시된 면접조사는 평균 4.7%포인트와 4%포인트 민주당 경쟁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업체별로 살펴보면 여론조사꽃, 리서치민, 에이스리서치 등이 특히 야권 후보 우위 과대 추정 정도가 심했다. 가령 여론조사꽃의 경우 경기도 지역구 여론조사 19건에서 9.1%포인트, 4월 실시한 여론조사 12건에서 7.9%포인트 야권 후보 우위를 과대 추정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수주한 입소스(SBS), 한국리서치(KBS) 등도 34개 업체 중 4번째와 8번째로 야권 후보 우위를 과대 추정하여 왜곡 정도가 비교적 심한 업체로 분류될 수 있었다. 반면 코리아정보리서치라는 업체는 오히려 여권 후보 우위를 과대 추정한 업체로 나타났다.
물론 야당의 압승이 ‘샤이 보수’ 현상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선거 직전 터져 나온 용산발 악재가 ‘샤이 보수’ 현상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반면 ‘밴드왜건’ 효과 등으로 인한 선거 결과 왜곡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원천적으로 확인 불가능하다. 특히 권력의 속성상 승자의 득표율을 과대 추정했을 때는 문제 제기조차 힘들다. 이런 맹점 때문에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추락에 크게 일조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