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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주택 수요 못따라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입력 | 2024-04-16 03:00:00

노인 1000만시대, 전국 8840채 그쳐
임대료 월 수백만원 고가에도 인기… 금융-건설업계, 속속 뛰어들어
정기수입 적은 노년층 ‘분양형’ 선호… 인구감소 89곳 허용, 수요와 엇박자



평창카운티 지하 1층 라운지 전경. 자료: KB골든라이프케어 제공


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164채 규모 노인복지주택 ‘평창카운티’. KB라이프생명 자회사에서 직접 운영·임대하는 곳으로 지난해 12월부터 7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입주민을 받기 시작했다. 주력 평형인 전용면적 39㎡ 방 현관에 들어서자 신발을 신을 때 앉는 안전의자가 눈에 띄었다. 욕실, 침실 등 곳곳에는 낙상 방지 손잡이가 설치돼 있었다. 침실 비상벨을 누르자 지하 1층 헬스케어실에서 24시간 상주하는 전담 인력이 3분 만에 도착했다.

각 주택 입주자의 움직임이 모션 센서에 감지되지 않아도 헬스케어실 사이렌이 울린다고 했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하기 전 상주 간호사가 먼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 여기에 더해 영양사의 맞춤형 식단, 전담 트레이너의 운동코칭 등도 받을 수 있다. 39㎡ 기준 보증금은 2억3000만 원이고, 매달 관리비와 식사비 등의 용도로 300만∼388만 원을 내야 한다. 한만기 KB골든라이프케어 시설장은 “지난달 한 손님이 내부를 둘러보던 중 저혈당 쇼크에 빠졌는데 상주 간호사가 잘 대응해 상태가 호전되자 곧바로 입주를 결정했다”고 귀띔했다.

노인 1000만 명 시대가 다가오면서 금융권, 건설업계 등이 잇달아 시니어주택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2015년부터 ‘임대’만 가능하던 것을 일부 지역에선 ‘분양’을 할 수 있도록 9년 만에 규제를 풀었다. 정기 수입이 많지 않은 노인들로서는 월세 부담이 만만치 않아서였다. 하지만 노인 인구 증가 속도를 감안해 시니어주택 공급을 늘리려면 수도권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2025년 10월 입주를 목표로 서울 강서구 마곡도시개발사업지구에 4개 동(지하 6층∼지상 15층), 810채 규모의 ‘VL르웨스트’를 짓고 있다. 한미글로벌도 내년 3월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115채 규모 시니어주택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신한라이프 △NH농협생명 △삼성화재 △교보생명 등 금융사들도 시니어주택 사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981만 명으로 10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은퇴자들은 기존 노년층에 비해 자산 수준이 높아 시니어주택 같은 새로운 형태의 주거 수요가 커졌다.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전국 노인복지주택(시니어주택)은 39곳으로 8840채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 ‘삼성노블카운티’는 전용 119㎡ 대형 평형 기준 보증금만 최대 12억 원이다. 별도로 임차료, 생활비 등 최소 월 4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입소하려면 1, 2년은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으로 정한 89개 지역에 한해 분양형 시니어주택을 허용하기로 했다. 매달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많지 않은 노년층 입장에선 월 임차료가 큰 임대형보다는 분양형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작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주택 건설에 따르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 선호한다.

일부에선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엔 부족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년층에겐 의료시설 접근성이 중요한데, 인구감소지역은 이를 충족하기 쉽지 않아서다. 수도권 내 인구감소지역은 인천 강화·옹진군, 경기 가평·연천군뿐이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은 “앞으로 수도권 노인 인구가 크게 늘어날 텐데, 실제 수요와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시니어주택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연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거주자들이 ‘노노(老老) 케어’나 자치활동 등을 통해 사회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주서령 경희대 주거환경학과 교수는 “시니어주택이라는 ‘하드웨어’에 일자리 연계 프로그램 같은 ‘휴먼웨어’까지 갖춰져야 거주자들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