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뇌질환과의 전쟁’ 뇌혈관 터져 고장나는 뇌… 해결 방법 없다지만 도전 과제 치매-자폐-파킨슨병-뇌전증 등… 전세계적으로 급증 추세 조기발견-정밀진단 어렵지만… 뇌건강 사회 향해 치열한 연구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게으름을 피워서 할머니께 박사 학위를 받는 것도 보여드리지 못하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었구나. 불효하게 되었다”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외할머니는 내게 굉장히 특별한 분이셨다. 나는 맏손녀였고, 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계속 우는 나를 업고 주무시고, 손으로 찢은 김치를 주시고, 입에 한번 넣어 식힌 음식을 먹여 주시던, 나에게 ‘사랑’이란 걸 깨우쳐 주신 분이 할머니셨다. 언제나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시며 너는 커서 꼭 유명한 사람이 되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뇌 질환에 대해서 잘 몰랐다. 뇌는 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뇌과학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는 것처럼 헬리콥터 조정법을 순식간에 알아낸다든지,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내 뇌로 다른 개체를 움직이는 아바타를 가지게 되는 것 같은 공상 과학과 바람의 영역이었다. 뇌가 고장 나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할머니는 교회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지셨고, 그 뒤로 의식 불명으로 병원에 실려 가셔서 수술받으신 뒤 며칠 후에 깨어나셨는데, 사실상 하루아침에 반신불수가 되셨고 다시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게 되셨다. 그리고 이미 고장 난 뇌를 고치는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뇌혈관이 터져서 뇌가 고장 난 상황, 이것은 해결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정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풀고 싶은 문제가 생기니 성적이나, 커리어, 무엇이 인정받는 길인지, 이런 것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그때까지 뇌 과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정한 방법론이나 지금까지의 학계의 가설에 의한 편견이 전혀 없었다. 무식하니 용감했다. 어느새 나는 ‘뇌 질환과의 전쟁’에 참전해 있었다.
게다가 뇌 질환은 초기 진단이나 자세한 진단이 어렵다. 이 때문에 실제 환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뇌 질환이 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지 그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희망과 고문은 사실 어울리기 어려운 단어다. 진실한 마음에 진정한 노력을 더해 만드는 희망은 사랑이 가득한 미래를 낳을 수 있다. 희망은 사랑이다. 뇌 질환을 정복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상황을 해결함은 물론이고 환자의 치료 비용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이는 좀 더 행복한 사회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 믿는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