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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덕 사진전 ‘고려인, 고려사람, 카레이츠’ [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4-04-16 22:35:00




하루하루 신문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가 작가로 발전한다면 그 정점에는 김남덕 작가 같은 삶이 있을 것 같다. 현재 강원일보 편집국 사진영상 담당 부국장인 김 작가는 2022년 춘천시민 114명의 펀딩을 “와유산수”라는 미술 여행 사진집을 냈다. 김홍도가 정조의 명을 받아 강원도 일대 명승지를 그리는 화첩여행을 모티브로 당시 화가들의 진경산수와 2백 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기획이었다. 경포대 금강산 동해 설악산 양양 철원 춘천 울진 포항의 절경을 과거와 현재 이미지로 설명했다. 이름 그대로, 누워서 유람하는 산수화 여행의 결실이었다.

자연과 사람을 테마로 다양한 사진 작업을 해 온 김 작가의 또 다른 시선을 정리하는 사진전 “고려인, 고려사람, Корейцы”이 열린다.

한국 사람들은 고려인이라고 부르지만 고려인들은 자신들을 고려사람이라 말한다. 러시아 말로는 ‘카레이츠(Корейцы)’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13년부터 러시아 연해주를 방문해 만난 고려인 촬영에서 시작되어 지난해 경주에서 만난 고려사람까지 긴 호흡으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14번째 개인전이다.



고려인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 전까지 농업 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현재의 러시아 및 구 소련지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 등)으로 이주한 이와 그 친족을 일컫는 말이다.

폭압적인 스탈린 정권에 의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된 뒤에도 고려인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삶을 일궈왔다. 열차에 실려 허허벌판에 내던져졌지만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을 개척해 벼농사와 목화농사를 지으며 빠르게 정착하였고, 모범적인 고려인 집단농장(콜호스)을 탄생시켰다. 1960년대까지 인구 30여만 명이던 고려인사회는 주로 농업분야에서 약 200명의 사회주의 노동 영웅을 배출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며 상당수 고려인들이 러시아의 극동지역 특히 연해주로 재이주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으로 귀환하는 고려인 동포가 많아졌고, 2010년대 중반부터는 해마다 그 수가 대폭 증가했다. 출입국 통계에 의하면 국내거주 고려인은 2020년 4월 기준 85,072명이며, 국가별 비중은 우즈베키스탄 46%, 러시아 33%, 카자흐스탄 15%이다. 2024년 20만명이 넘는 고려인이 고국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안산을 비롯하여 아산·인천·경주·광주(광역시) 등에 많이 거주하며, 안산 땟골마을과 광주 고려인마을, 경주시 성건동 등이 집단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고려인은 170여년 동안 삶과 운명을 공유하면서 생긴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모든 고려인은 한 가족이자 형제라고 생각하며 산다.



김남덕 작가는 2013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고려인들을 만났다.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다시 이주해 돌아온 사람들었다. “말은 다르지만 내 마음을 당기는 강렬한 힘이 있었다. 아, 이게 뿌리라는 감정이구나. 같은 뿌리를 공유한 한 민족이라는 느낌.” 김 작가의 작업은 이 때 시작되었다.

경주 성건동에 5천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사진으로 기록했다.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 한국학과 소속이면서 중앙대 연구교수로 한국에 와 있는 바짐 아꿀렌꼬 교수가 동행해 통역과 역사적 배경을 부연해 주었다.

나라가 힘을 잃어 국민들의 생활을 돌보지 못한 아픈 역사가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은 지 160년이 지났다. 고려사람들은 고단했던 삶의 여정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오늘의 전시가 먼 길을 돌아 조상들의 고향을 찾아온 카레이츠(Корейцы)를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게 작가의 바램이다.


전시제목: 고려인, 고려사람, Корейцы
일시: 2024년 4월20일~5월19일
장소: 밋업 커피하우스(경주시 성건동 174-9)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