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던 기업들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슬금슬금 가격 인상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15일 굽네치킨은 9개 제품 가격을 1900원씩 올렸다. 일부 메뉴는 2만 원을 넘어섰다. 파파이스도 치킨, 샌드위치(버거) 등의 가격을 평균 4% 올렸다. 앞서 12일 쿠팡은 유료 회원제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 월 구독료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 올렸다. 총선 이틀 뒤 금요일 밤의 기습 인상이었다.
▷‘금사과’로 대표되는 고물가는 이번 총선 레이스 내내 주요 이슈였다. 과일, 채소값뿐만 아니라 생활품목 전반의 물가 오름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식용유, 된장 등 다소비 가공식품 32개 품목은 평균 6.1% 올라, 3%대 초반인 전체 물가상승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코코아, 설탕, 김, 올리브 등의 국제 가격이 작황 악화 등으로 오르고 있어 식품업체들은 과자, 초콜릿, 빵 등의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정부의 물가 관리는 많이 오른 품목을 쫓아다니며 관리하는 ‘두더지 잡기’ 식이었다. 지난해 상반기엔 부총리가 직접 나서 술값과 라면값을 압박하더니 지난해 11월엔 ‘빵 과장’ ‘배추 국장’ 식의 품목별 물가 담당자를 지정해 전담 관리에 나섰다. 과일·채소값이 뛰어오르자 올해 들어 사과, 대파 등 많이 오른 품목을 중심으로 납품단가 지원, 정부 할인 쿠폰 등을 집중 투입했다. 각종 할인으로 가격을 안정시킨 우수 사례를 홍보하려다 ‘대파 875원’의 사달이 났다.
▷정부가 품목별 할인 지원, 인상 자제 요청 등의 대증 대책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중동 전쟁 확전 위기감이 커지며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는 등 물가 외부 요인도 불안해졌다. 여기에 총선 때까지 꾹꾹 눌러놨던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까지 꿈틀대고 있다. 할인으로 가격을 억지로 누르고, 가격을 올린 업체를 찾아가 단속·압박하는 방식만으로 어느 세월에 물가를 잡을지 걱정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