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 있는 필립스 컬렉션은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관이다. 1921년 미술품 컬렉터였던 덩컨 필립스가 설립했다. 인상파 이후 유럽 현대미술을 가장 먼저 미국에 소개한 이곳은 현재 5000점이 넘는 소장품을 자랑하고 있다. 그중 필립스가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칭송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오노레 도미에의 ‘봉기’(1848년경·사진)다. 부호 컬렉터는 어째서 민중 봉기를 그린 그림에 매료됐을까?
필립스는 피츠버그의 대부호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업보다는 가문의 돈을 잘 쓰는 데 진심이었던 터라 열정적인 미술품 수집가가 되었다. 30대 초 아버지와 형을 차례로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 그는 자택 안에 가족을 기리는 필립스 메모리얼 갤러리를 설립했다. 화가 마저리 애커와 결혼하면서 갤러리를 일반에 공개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필립스 컬렉션의 시작이다.
개관 초기였던 1925년 도미에의 ‘봉기’가 시장에 나오자, 필립스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사들였다. 그림은 루이 필리프 왕정을 무너뜨린 1848년 혁명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흰옷을 입은 남자가 오른손을 치켜들고 시위대를 이끌고 있고, 어린아이와 여자, 중절모를 쓴 부르주아 남성까지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배경 오른쪽에는 수직 벽이 보인다. 깨부수어야 할 봉건시대의 낡은 틀을 상징하는 것 같다. 선봉에 선 남자의 팔 아래는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머리 위로는 밝은 빛이 비친다. 그가 두렵지만 앞서서 나아가는 이유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