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지 20일이면 두 달이 된다. 사진은 지난달 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모습. 뉴스1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단체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의료계에서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한 신문 칼럼을 인용해 “수련병원 교수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이 생기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들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착취의 사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왔다”고 썼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어떤 교수는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전공의를 야단치기도 했다. 야단맞은 전공의는 굴욕감과 수치심으로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스승과 제자 관계라 참아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고 매일 야근을 해도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그래도 전공의 시절만 잘 버티면 그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착취의 사슬에 시달리다가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에게 정부는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필수의료 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 등을 내밀었다. 그러자 전공의들은 휴식권, 사직권, 일반의로 일할 직업 선택의 자유, 강제 노역을 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고 맞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공공병원장과 의대 학장들은 고질적인 시스템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이제는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 돌아오라는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 6·25전쟁 등 힘든 상황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며 어서 돌아오라고 한 대학 총장도 있었다. 돌아와도 시스템이 전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전공의와 의대생에겐 허공에 뜬 메아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전공의 병원 이탈로 인한 신음은 여기저기서 들린다. 서울대 의대 교수 41%가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고 절반가량이 심한 스트레스 증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선 전공의가 떠난 뒤 40여 일 만에 약 500억 원의 적자가 났다. 환자 쏠림 현상의 상징이 된 병원이면서 가장 매출이 많은 곳인 만큼 적자 폭도 큰 것이다.
의대 교수 상당수가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고 병원에서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건 거꾸로 지금까지 전공의들이 그곳에서 수많은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고통을 감내하고 저임금 속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로만 비친다. 그래도 현재 의대 교수들은 당직 등으로 피로도가 극에 달했지만 기존 월급 정도는 받고 있고, 서울아산병원은 설립자가 환자 대상 진료에서 이익을 내지 말라는 설립 이념에 따라 세운 만큼 적자를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대 교수라는 직책이 ‘착취 사슬의 중간관리자’로 불리지 않고 존경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우선 전공의들에게 그동안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오랫동안 이어진 관습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머리를 맞대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