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 설계사 1년새 10%이상 증가 고액에 영입뒤 과도한 영업 압박 고객맞춤 대신 高수수료 상품 권해 지난해 청약 철회 건수 45% 급증
60대 박모 씨는 10년 전 국내 한 대형 생명보험사의 보험설계사를 통해 암 보험에 가입한 뒤 단 한 차례도 밀리지 않고 보험금을 내왔다. 하지만 정작 지난해 말 위암 진단을 받고 나서는 보험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기존 계약을 맺었던 설계사가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으로 이직하면서 암 보험 신규 가입을 권유해 상품을 갈아탔는데 면책 기간(90일)이 끝나기 전 암에 걸린 탓이다. 박 씨는 “면책 기간과 관련해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며 “앞으로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GA의 보험설계사 영입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박 씨와 같이 설계사를 따라 상품을 무리하게 갈아타면서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GA가 높은 이적료로 설계사를 스카우트한 뒤 각종 독소조항으로 영업을 강제하면서 고객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높은 수수료의 상품만 추천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 대형 GA 10% 늘 때, 청약 철회 45% 급증
외형 확대와 달리 내실은 제대로 다지지 못했다. 지난해 대형 GA의 청약 철회(신규 계약 한 달 내 철회) 건수는 총 47만4598건으로 2022년(32만6876건)보다 45.2% 급증했다. 보험 계약유지율도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대형 GA의 보험 13회차 계약유지율은 생명보험이 81.5%, 손해보험이 83.2%로 1년 전 대비 각각 2.2%포인트, 3.6%포인트 줄었다. 보험 계약 후 13개월을 유지하지 못한 이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한 대형 생명보험사 지점장은 “GA가 설계사 영입이나 과도한 영업 압박을 통한 외적 성장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며 “보험 계약 후 단기간에 해지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이유”라고 전했다.
실제 3년 전 생명보험사에서 대형 GA로 이직한 설계사 이모 씨(58)는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려 했지만 실패했다. 2억 원의 이적료를 받으며 대리점 대표 명의로 본인 소유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이 씨는 “이적료 이상의 영업 실적을 채우는 즉시 근저당을 해지하는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탓에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수수료 2배 유혹에 맞춤형 서비스는 뒷전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영업 실태가 결국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GA 업계 내 과도한 설계사 영입전을 자제하자는 내용의 ‘자율 협약’ 구속력을 높이거나 생명·손해보험협회와 GA 협회 간 통일된 벌칙 규정을 제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