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서 ‘살인 안드로이드’ 다룬 작가 이번엔 창작 AI와 인간의 관계 다뤄 ◇ 밤의, 소설가/조광희 지음/196쪽·1만6000원·문학과지성사
“제 얘기가 괜찮은가요?”
인공지능(AI) 레비는 작가 건우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레비는 방금 건우의 지시를 받아 소설을 썼다. 건우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틀을 정하긴 했지만, 세부 묘사나 대사는 모두 레비가 만들었다.
그런데 건우는 레비가 만든 소설이 왠지 찜찜하다. 건우가 지시를 안 했는데 소설엔 레비가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밤의’, 직업을 소설가라고 정하고 소설 제목을 ‘밤의, 소설가’라고 지은 의도도 의심된다. 마치 레비가 자신을 배후에서 활약하는 ‘밤의 소설가’라는 걸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건우가 레비에게 제목을 지은 이유 등을 캐묻자 레비는 이렇게 변명한다. “저는 의도가 없습니다. 제게 주신 소설의 가이드라인을 제 알고리즘이 처리한 결과일 뿐인데, 그 이유를 굳이 물으신다면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작품이 흥미로워지는 건 후반부에 이르러서다. 건우와 레비는 소설의 방향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건우가 소설에서 남녀의 성애(性愛)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자 레비는 건우가 책을 팔기 위해 초심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자책한 건우는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곧 경찰 수사가 시작돼 레비는 AI 최초로 신문을 받는다. 왜 건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느냐는 질문에 레비는 태연하게 “건우는 자신이 독자나 문학 공동체로부터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믿었다”고 답한다. 레비를 범인으로 몰기엔 증거가 부족해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레비가 자의식을 지니긴 한 걸까. 건우의 죽음은 정말 레비 때문일까. 소설의 결말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AI가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지금, 읽어볼 만한 디스토피아 소설임은 틀림없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