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세브란스병원 교수-청각장애 전정협 씨 초등학생 시절 장애 확인한 후 입모양-보청기로는 소통에 한계 30세에 왼쪽 귀 수술, 재활 거쳐 1년여 뒤 통화 성공해 사실상 완치 직장서 승진-운전 중 대화도 원활… 한쪽 귀만 건강보험 혜택 아쉬워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오른쪽)는 보청기만으로 한계가 있다면 인공 와우 수술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가 인공 와우 수술을 집도한 전정협 씨(왼쪽)는 10년 넘게 보청기를 쓰다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뒤 청력의 90% 이상을 회복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초등학생이던 28년 전, 전정협 씨(39)는 청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친구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특히 여자아이들과 대화할 때 어려웠다.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더 웅얼대는 것처럼 들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전 씨의 인공 와우(蝸牛·달팽이관) 수술을 집도한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여자아이 목소리는 전 씨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를 넘어서는 고음이기 때문에 더 듣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씨의 청각장애는 담임선생님이 발견했다. 교사의 권유에 따라 부모님이 전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검사 결과 청각장애가 확인됐다.
● 10년 넘게 보청기 착용했지만…
방심하는 동안 청력은 더 떨어졌다. 중고교 때는 수업 시간에만 잠깐 보청기를 착용했다가 뺐다. 친구들에게 보청기 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전 씨를 사오정이라고 불렀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의미에서다. 큰 상처로 남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 무렵부터 친구들 입 모양을 보고 말뜻을 짐작했다.
고교까지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훨씬 많아지면서 결국 양쪽 귀 모두에 보청기를 착용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다. 보청기만으로는 한계가 느껴졌다. 전 씨는 “사회복지사 2년 차부터 업무가 다양해졌다. 동료들과 대화하거나 전화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입 모양을 보지 않고는 소통할 수 없으니 답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승진은 꿈도 꾸지 못했단다.
30세 때 대장 질환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간 김에 이비인후과 진료도 받았다. 그때 최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전 씨에게 인공 와우 수술을 권했다. 최 교수는 “당시 전 씨의 청력은 양쪽 모두 10% 정도만 남았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입 모양을 본다 해도 대화 내용의 50%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 인공 와우 수술 후 이명 사라져
최 교수는 “보청기는 최대 30%의 청력만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청력이 50%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했을 때 80% 수준까지는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력이 70∼80% 이상 떨어졌다면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교정 후 청력이 최대 50%가 되지 않는다. 웅성대는 느낌만 들 뿐 대화 자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전 씨에게 남아있는 청력은 10% 정도. 최 교수는 인공 와우 수술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공 와우 장치 중에서 뼈 안쪽에 삽입하는 내부 장치. 전극 끝이 달팽이관과 연결돼 청각 신경을 자극한다.
사실 전 씨는 수술 성공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상대방 입 모양을 보며 대화했기에 과연 청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최 교수와 대화한 후 마음을 굳혔다. 전 씨는 “최 교수님이 수술 성공을 확신했기에 믿음이 갔다.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2015년 12월, 청력이 더 안 좋은 왼쪽 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나 사흘 만에 퇴원했다. 수술하고 열흘 만에 이명(耳鳴)이 많이 사라졌다. 원래 청력이 떨어지면 청각세포들이 ‘더 잘 들으려고’ 과도하게 작동하는 바람에 이명이 생긴다. 그러니 이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청력이 좋아질 것이라는 징조다.
● 수술보다 어려운 재활 과정
인공 와우 수술은 대략 1시간이면 끝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수술 자체는 고난도가 아니다. 수술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그런데도 수술받은 사람 중에서 청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비율이 약 10%다. 왜 그럴까. 청각장애 기간이 길수록 재활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수술하면 바로 소리가 들릴 거라 기대했다가 재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힘들어하다 포기하는 비율이 10%라는 뜻”이라고 했다. 당연히 20년 동안 제대로 듣지 못하던 전 씨도 재활 과정은 어려운 편이었다.
전정협 씨가 인공 와우 장치를 착용한 상태. 귀 뒤쪽으로 노출된 것이 어음처리기(점선 원 안)다.
이후 1주일 간격으로 총 5회 장치를 조정했다. 당장은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보청기를 함께 착용하지 않으면 소리 구별이 어려웠다. 소리가 더 커진 것 같기는 했지만 맑지는 않았다. 조바심이 날 법도 했지만, 꾹 참았다.
수술 5개월째부터 변화가 두드러졌다. 언어 평가 결과 보청기만 착용하면 30%가 들렸는데 인공 와우 장치로는 57%를 들었다. 두 장치를 함께 착용하니 모든 문장을 맞혔다. 수술 7개월째로 접어들면서는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92%를 알아들었다. 이때부터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아내 덕이 컸다. 전 씨는 매일 4시간씩 아내와 대화했다. 아내는 회사에서 있었던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 모두 들려줬다. 대화를 반복하면서 점점 많은 말을 알아듣게 됐다. 나중에는 아내의 말실수도 콕 집어냈다. 최 교수는 “수십, 수백 번 듣고 대화하면서 정확한 발음을 찾아내 뇌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재활 과정을 잘 넘긴 사례”라고 설명했다.
● 1년 만에 90% 이상 청력 회복
인공와우 수술을 한 후 소리에 적응하며 청력을 회복하는 지표를 크게 7단계로 나눈다. 단계가 높을수록 난도가 높다. 맨 마지막 7단계를 통과하면 완치로 규정한다. 이 7단계가 바로 전화 통화다. 사람 입 모양을 볼 수 없는 데다 자연적인 소리가 아닌 기계음을 이해해야 하므로 가장 어렵다. 요컨대 시각 정보 없이 오롯이 낯선 음성을 이해해야 한다. 전 씨는 7단계를 1년여 만에 통과했다.
인공 와우 장치를 착용한 지 어느덧 8년여. 전 씨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전 씨는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귀가 나쁘니 인공 와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전 씨는 왼쪽 귀만 인공 와우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완벽하게 모든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왁자지껄한 곳에서는 대화가 어렵다. 오른쪽 귀는 여전히 들리지 않기에 오른쪽에서 누군가 말하면 알아듣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른쪽 귀도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행 건강보험 제도에서는 한쪽 귀만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 때문에 추가 수술에는 3000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최 교수는 “청각장애자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양쪽 귀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