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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영화화 권리마저 빼앗은 플랫폼 ‘갑질계약’

입력 | 2024-04-22 03:00:00

공정위, 네이버웹툰 등 7개사 적발
번역 등 2차적 저작물 권리 독점
계약제한-손해배상 조항 등 시정
콘텐츠 제작사-출판사 등 점검 확대




공모전에 당선돼 한 웹툰 플랫폼에서 작가로 데뷔할 기회를 얻은 A 씨는 연재계약서를 살펴보던 중 미심쩍은 조항을 발견했다. 플랫폼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권리까지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A 씨는 해당 조항이 불공정 계약에 해당된다는 걸 알았지만 계약이 해지될까 걱정돼 문제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웹툰 작가들을 울리는 대형 플랫폼들의 불공정 행위가 최근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K웹툰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드라마가 다수 제작되고 있지만 정작 웹툰 작가들은 여전히 불공정 계약에 노출돼 있었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네이버웹툰 등 26개 웹툰 플랫폼 사업자의 웹툰 연재계약서를 점검한 결과 이 중 7개 사업자가 작가들에게 불리한 불공정 약관을 사용하고 있었다. 26개 사업자는 2018년에도 불공정 연재계약이 적발된 곳들이다.

이번 재점검에서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등 2차적 저작물의 작성·사용권을 플랫폼이 갖도록 한 조항이 문제가 됐다.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작가가 작품뿐만 아니라 번역 작품과 관련한 서비스권까지 레진 측에 부여한다는 내용을 약관에 담고 있었다. 인기 웹툰이 번역돼 해외에도 서비스될 때 관련 권리를 플랫폼 측이 갖겠다는 것이었다.

2차적 저작물과 관련해 경쟁사와의 계약을 제한한 조항도 적발됐다. 네이버웹툰은 2차 저작물 작성권을 제3자에게 넘기려면 네이버웹툰의 사전 서면 동의를 받도록 했다. 엔씨소프트는 작가가 엔씨소프트와의 우선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에도 엔씨소프트가 제시한 조건과 동등하거나 이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다른 곳과 계약을 해선 안 된다고 약관에 명시했다. 불공정 약관에는 작가의 행위로 손해가 발생했다면 고의, 과실을 따지지 않고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문제가 된 약관들은 공정위 심사 후 시정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에 적발된 7개 사업자 외에도 불공정 웹툰 계약 관행이 만연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웹툰 작가 8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7.9%는 불공정 계약 또는 행위를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주변 동료가 경험했다는 응답은 39.6%였다. 계약과 관련된 불공정행위를 한 상대는 에이전시·매니지먼트(65.6%)에 이어 플랫폼(39.7%)이 두 번째로 많았다. 공정위 역시 20여 개 콘텐츠 제작사, 출판사 및 플랫폼의 약관에 대해서도 추가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2차적 저작물의 작성권을 무단으로 설정한 조항이 약관에 포함돼 있다는 지적을 받고 시정한 네이버웹툰 측은 “권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달라는 통상적인 차원에서 문구를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2차적 저작물 사업에 대해서는 대리중개계약을 별도로 체결하고 2차적 저작물 사업 진행 시에도 창작자에게 최종 결정을 받아왔다”고 덧붙였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