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부친, 병원 조기 퇴원후 사망 지원센터에 신고했는데 답변 없어” 정부 “의료공백 연관성 입증 어려워” “정부-의사, 책임 피하려 소극적” 지적
2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텅 빈 병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정부가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연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의료 공백으로 인한 환자 피해’로 인정된 사례는 1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의료공백 피해 연관성 입증 0건
정부가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지원하고 소송을 돕겠다”며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연 지 두 달이 됐다. 그동안 약 2400건의 피해 상담이 접수됐지만 의료공백과 연관성이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환자들은 “정부와 의료계가 인과관계 규명에 소극적”이라고 주장한다. 》
이종호 씨(44)의 아버지는 2월 말 장폐색으로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퇴원 후 이틀 만에 증상이 악화돼 패혈증으로 숨졌다. 이 씨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의 병원 이탈로 대형병원 진료가 축소되면서 입원 환자들이 대거 퇴원하던 시기에 아버지도 병원을 나와야 했다”며 “의료공백으로 수술이나 진료를 못 받아 숨진 건 아닌지 꼭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난달 25일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피해신고서를 냈지만 한 달 가까이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 그는 “센터에 진행 상황을 문의해도 ‘잘 모르겠다’고만 하더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가 “의료공백으로 피해를 입은 환자와 가족을 지원하고 민형사상 소송도 돕겠다”며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연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 피해’로 인정된 사례가 1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소송을 지원한 경우도 없었는데 환자단체는 “정부와 의사단체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의료공백과 환자 피해 사이의 관련성을 밝히는 것에 소극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정부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 인정 0건”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응급실 표류’ 사망 5건 역시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의료공백과의 연관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병원 7곳에서 수용이 거부된 후 사망한 대전 80대 심정지 환자(2월 23일)와 병원 6곳에서 수용이 거부된 후 사망한 경남 김해시 60대 심장질환자(3월 31일)에 대해선 의사 집단행동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냈다. 또 △전신주에 깔린 후 병원 3곳에서 수용을 거부당하고 숨진 충북 충주시 70대 여성(3월 23일) △도랑에 빠진 후 병원 10곳에서 수용을 거부당하고 숨진 충북 보은군 33개월 여아(3월 30일) △병원 10곳 이상에서 수용을 거부당한 후 울산에서 사망한 부산의 50대 대동맥 박리 환자(4월 1일)에 대해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환자 피해와 의료공백의 연관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망 사건의 경우 전공의 이탈 후 응급실 및 중환자실 가동률이 하락한 것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순 있지만 직접적으로 ‘전공의가 근무했다면 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의사단체도 보도되는 사망 사고들은 의료공백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지난달 31일 사망한 김해시 60대 환자와 이달 1일 사망한 부산 50대 환자의 경우 대동맥 박리 환자라는 점을 지적하며 “대동맥 박리 수술을 응급으로 진행할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고 흉부외과는 전공의에 의존해 진료와 수술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전공의 사직 사태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정부-의사, 의료공백 피해 인정 꺼려”
정부와 의사단체가 모두 소극적인 이상 환자가 피해를 입증해 보상을 받기도 쉽지 않다. 법률사무소 해울 신현호 변호사는 “법적으로는 환자 사망이 전공의 이탈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환자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6년 전 심장 수술을 받은 강모 씨(71)는 “갑자기 쓰러지면 제때 치료를 받을 순 있을지, 피해가 생기면 보상은 받을 수 있을지 두렵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