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전쟁을 취재하다 헤즈볼라의 인질로 붙잡혔던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기자(왼쪽)가 억류 6년 만인 1991년 12월 석방 당시 딸 설롬과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미국대사관을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1947년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1975년 언론계에 입문한 앤더슨 기자는 AP통신의 일본 도쿄특파원이던 1980년 5월 광주에서 총 9일간 머물며 5·18을 취재했다. 그는 2020년 출간한 책 ‘AP, 역사의 목격자들’에서 “소식을 듣자마자 광주로 향했다. 10km를 걸어 광주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전남도청 인근 호텔에 묵던 그는 방으로 날아온 총탄을 바닥에 엎드려 가까스로 피하는 등 위험천만한 취재를 이어갔다.
광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본 시체 수를 셌던 그는 “언론인으로서 나의 임무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 즉 ‘사망자 수’를 기록하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기사에서 ‘폭도 3명이 숨졌다’는 계엄군의 발표와 자신이 직접 센 사망자 수 179명을 둘 다 적어 송고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앤더슨 기자의 기사가 사료 가치가 높다”며 당시 그가 보낸 기사 원고 텔렉스 13장을 공개했다.
귀국 후 강연, 방송, 자서전 집필, 자선 사업 등으로 바빴지만 개인사는 순탄치 못했다. 헤즈볼라의 배후 세력으로 자신의 납치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미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 중 2600만 달러(약 360억 원)를 보상금으로 받았지만 모두 날렸고 2009년 파산했다. 3번 결혼하고 이혼했으며 두 딸이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장녀 설롬(39)은 “세상은 아버지를 두고 ‘고통’을 떠올리지만 그가 베푼 선행을 기억해 달라”고 추모했다. 줄리 페이스 AP통신 수석부사장 겸 편집국장은 “그가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보도하는 데 전념했다”고 애도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