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 2년, 유럽엔 ‘안보 각성’의 시간 일본은 동맹 결속하며 군사대국화 질주 이념외교론 ‘초불확실 파고’ 넘을 수 없어 中과 소통-北위기 관리 위한 유연함 절실
이철희 논설위원
지난 주말 미국 하원에서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에 대한 안보지원 예산안이 통과됐다. 공화당 강경파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반대로 6개월이나 표류했던 이 예산안은 “연말이면 우크라이나가 패전할 수 있다”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경고 끝에 하원 문턱을 넘었다. 그나마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이 없었다면 기약 없이 미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일단 한숨 돌리게 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5발 쏠 때 고작 1발로 응수하며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군사지원은 우크라이나 생존에 절대적이다. 다른 국가들의 지원액을 다 합해도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은 유럽에는 ‘안보 각성의 시간’이었다. 각국은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의무복무제 도입도 추진하고 있지만 ‘유럽안보의 유럽화’는 요원하다. 당장 미군이 빠진 200만 유럽 병력은 허울뿐인 ‘포템킨 군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령관은 미군 4성 장군이 맡아왔고, 유럽 군대는 그 지휘 아래 항공 지원과 정보까지 전적으로 의존했다. 유럽이 자체 방위력을 키우는 데는 최소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미국 밀착은 거침없는 군사대국화와 맞물려 있다. 지난 2년간 방위비를 50% 늘린 일본은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를 달성해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군사비 지출 강국으로 발돋움한다. 토마호크 미사일 400기도 도입해 반격 능력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때부터 걸어온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길을 쾌속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행보는 우리에겐 질시와 불안을 부르는 불편한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도 북핵 위협에 맞서 확장억제 같은 한미동맹 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대일관계 개선을 밀어붙인 끝에 한미일 3각 안보 협력도 확고히 했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세계적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하는 터에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노선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쉽고 뻔한 길이었다. 특히 윤 대통령의 행보는 과감했지만 거칠었다. 미국 일변도 외교는 중국의 거센 반발을, 대일관계 급진전은 국내적 반감을 불렀다. 이번 4·10총선에선 야당 대표가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 하면 되지”라는 경박한 언사를 쏟아놓는데도, 민심은 오히려 정부여당에 박절할 만큼 인색했다. 정부가 자랑하는 외교적 성과가 묻힐 만큼 다른 정부 실책들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총선 참패에도 명시적인 공개 사과를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이다. 마음에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윤 대통령으로선 무엇보다 뚝심 있는 외교로 이룬 성과를 몰라주는 민심에 섭섭할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외교정책만큼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많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유연하고 정교해져야 한다. 단조로운 음악의 볼륨만 높이는 외교는 피로감을 낳을 뿐이다. 이념 편향적 가치외교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꽉 막힌 중국과의 외교적 소통부터 나서야 한다. 북한발 충돌 위기를 관리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여전한, 오히려 퇴행하는 역사인식에는 할 말을 해야 한다.
일본은 미국과 손잡고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면서도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중일관계’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다. 북한의 도발을 맹비난하면서도 정상회담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한다. 당장 성과가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소통 창구를 열어 두고 관리 차원의 접근을 중단하지 않는 일본 외교를 우리 정부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