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로 ‘핫플’ 된 브루클린 강변
1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거버너스아일랜드 인근 부두에서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 헬렌 헤트릭 국장이 뉴욕 연안에서 키운 굴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김현수 뉴욕 특파원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 내 윌리엄스버그에 지난해 문을 연 에르메스의 임시 매장. 윌리엄스버그 일대는 최근 에르메스, 샤넬 같은 럭셔리 브랜드와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지역으로 변신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규제 푼 윌리엄스버그의 변신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20년)에서 주인공 개츠비(티모테 샬라메)는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재치 있게 꼬집었다. 비싼 임대료 탓에 터전을 잃어가는 청년들의 설움은 뉴욕이나 서울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엄스버그가 주목받은 것도 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었다. 맨해튼에서 밀려난 이들이 유입되며 동네 분위기가 차츰 변해갔다. 과거 번성했던 설탕이나 우산, 섬유 공장이 문을 닫으며 버려진 건물들에, 싼 임대료를 찾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생기를 찾았다.
결정적 변신의 계기는 2005년에 찾아왔다.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이 지역의 용도변경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브루클린에서 퀸스에 이르는 이스트강 강변 지대는 원래 산업용도로 묶여 있었으나, 고질적 주택난 해소 및 새로운 산업 유치를 위해 규제를 풀어버렸다. 블룸버그 시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금싸라기 땅인데도 오랫동안 버려졌던 이곳을 쓰레기장이나 발전소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즐기고 일하는 지역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뉴욕시는 이스트강 강변지대를 주거 및 상업 용도로 전환하고, 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에 세액 공제와 인프라 건설 같은 지원을 제공했다. 특히 아파트의 30% 가구 안팎을 저소득층을 위한 장기 임대로 구성하면 고도 제한까지 풀어 30∼50여 층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심지어 25년 세액공제 혜택도 제공했다. 장기임대 가구의 확보는 기존에 거주하던 저소득층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앤드루 킴벌 뉴욕시 경제개발공사(NYCEDC)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구역 재조정, 세액공제를 통한 대규모 주거개발, 수상 대중교통 도입 등으로 뉴욕 이스트강 강변지대는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탈바꿈했다”고 설명했다.
●“도시 개발의 핵심은 대학”
뉴욕 강변 개발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17일 찾은 맨해튼 남쪽 섬 거버너스아일랜드 역시 새로운 변신을 기다리고 있다. 강물과 대서양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면적 약 70만 ㎡의 섬으로 월가에서 남쪽으로 800여 m 떨어져 있다. 여의도의 약 25% 크기인 이곳은 남북전쟁 시절 남부군 감옥이 있었으며, 18세기 이후 미 군부대가 주둔하던 미개발 지역이다.
현장에서 만난 새러 크라우트하임 거버너스아일랜드재단 부대표는 페리 선착장 쪽을 가리키며 “4년 뒤 여기에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대학과 연구센터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방정부로부터 섬의 관리를 위임받았을 때, 주거 용도로는 개발하지 못하는 조건이 있었다”며 “거주민이 없어 실험적 연구가 가능한 점을 이용해 세계적인 기후변화 연구 허브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뉴욕시는 세계 주요 대학들에 기후변화연구센터 제안서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전했다. 50여 개 대학이 관심을 보였고 지난해 스토니브룩대와 조지아공대, 듀크대, IBM 등이 참여하는 산학연합 스토니브룩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무려 7억 달러(약 9646억 원) 이상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섬에선 이미 기후변화 관련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연안에서 굴을 키워보는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현장에서 만난 헬렌 헤트릭 커뮤니케이션담당 국장이 연안 부두에 걸린 밧줄을 끌어올리자 작은 우리 안에 진흙과 굴이 얽혀 있는 게 보였다. 헤트릭 국장은 “뉴욕 굴요리 레스토랑에서 수백만 개의 껍데기를 가져와 굴이 자라도록 키우고 있다”며 “굴은 바다 오염을 정화하는 필터 역할을 하는 데다 자연재해도 막아주며 해양 생태계의 다양성을 복원시키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뉴욕은 거버너스아일랜드 개발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과거 이스트강의 또 다른 섬 루스벨트아일랜드 개발에 성공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로 미 월가가 초토화되자, 당시 막 부상하고 있던 ‘실리콘밸리’를 뉴욕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스타트업과 신기술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스탠퍼드대처럼, 코넬공대를 루스벨트아일랜드로 유치해 뉴욕 테크 산업의 허브로 키워냈다.
뉴욕시는 ‘기후 익스체인지’로 불릴 거버너스아일랜드의 새 캠퍼스도 22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연간 대학생 600명과 직업 훈련생 6000여 명, 교수진 250여 명이 상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