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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韓갈등’ 한복판 섰던 이관섭 실장, 용산 떠나다

입력 | 2024-04-24 03:00:00

잼버리 수습-영남 끌어안기 등 역할
尹에 의대 증원 유연 대응 건의도
“관료 출신… 정무 조정엔 한계” 평가
尹, 직접 차문 열고 닫아주며 배웅… 대통령실 합창단은 李애창곡 불러



尹, 이관섭 배웅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이관섭 비서실장 퇴임 및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 취임 인사 행사 뒤 대통령실 청사를 떠나는 이 전 비서실장을 배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왕(王)실장이 용산을 떠났다.” 2022년 8월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입성해 국정기획수석, 정책실장에 이어 지난해 말 비서실장(장관급)에 오른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4·10총선 참패에 따른 쇄신 국면에서 물러났다. 추진력을 인정받은 이 실장이었지만 관료 출신의 한계도 동시에 묻어났다. 3기 대통령실 체제 출범을 두고 “국정 기조와 방향이 수립된 대통령실 2년이 일단락되고 ‘정무와 관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직접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했지만, 이 실장은 23일 오전 수석들과의 오전 티타임을 주재했다. 현역 의원인 정 실장의 의원직 사직 수리 절차가 이날 오후 1시 무렵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이날 오후 퇴임식에서 “개혁 과제들을 많이 남겨두고 떠나 죄송스럽지만, 우리가 추진했던 여러 개혁 과제들은 차질 없이 추진될 것으로 믿는다”며 “소통과 상생의 정신으로 긴 호흡을 가지고 간다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실장은 2022년 8월 전임 김대기 비서실장 체제에서 대통령실의 정책 기능 강화를 위해 대통령실에 들어왔다. 새만금 잼버리 파행 때는 직접 곳곳에 전화를 돌려가며 파행을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했다. 대구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실장은 서울 태생인 윤 대통령이 영남 보수층 정서에 다가가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윤 대통령이 지역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듣는 과정에 함께했다.

이 실장은 올해 1월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논란을 둘러싼 윤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 갈등 국면의 한복판에 있기도 했다. 당시 한 전 위원장과 만난 이 실장은 사퇴 요구가 담긴 윤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했다. 이후 ‘윤-한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 관여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실장은 “지금은 말할 것이 없다”고 했다.

관료 출신으로서 여야 정무 조정 역량엔 한계를 내비쳤다는 평가도 있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서 유연한 대응을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지만 당장 뚜렷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수직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당정 관계에 대한 유연한 조정이나 갈등 조정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여권 관계자는 “권위적이라는 지적이 불거진 윤 대통령의 이미지나 대국민 소통에 대한 개선을 이끌어내는 데도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23일 퇴임식에는 이 실장이 단장인 대통령실 합창단 ‘따뜻한 손’이 등장해 윤 대통령의 설 인사 합창곡이었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와 이 비서실장의 애창곡인 ‘마이 웨이(My Way)’를 불렀다. 윤 대통령은 이 실장이 타는 차량의 문을 직접 열고 닫아주며 차가 멀어질 때까지 그를 지켜봤다. 그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 청와대,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근무를 비롯해 네 번째 대통령실 근무였다.

용산 안살림은 5선 의원인 정 실장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이날 그는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이끄는 핸들이고 엔진”이라면서 “사(私)는 멀리하고 공심(公心)만 가지고 임한다면 지금의 난관을 잘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실장의 장점과 한계가 함께 드러난 국정 보좌 역할을 ‘중량급 정무형’ 인사인 정 실장이 풀어가야 하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