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前저출산위 부위원장 “부처, 예산 따려 사업마다 ‘저출산’ 주거지원 신혼부부 80%는 받게해야”
“각 부처에서 예산을 따려고 온갖 사업에 ‘저출산’ 꼬리표를 붙여 가져옵니다. 정부도 ‘예산을 덜 쓴다’는 비난이 겁나 이것저것 끼워 넣다 지금 같은 상황이 된 겁니다.”
올 2월 퇴임 직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부위원장(장관급)은 18년 동안 약 380조 원을 투입하고도 합계출산율이 급락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학자 출신으로 나경원 전 부위원장의 뒤를 이어 지난해 2월 취임한 김 전 부위원장은 “넓게 보면 인구와 관련 없는 예산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재임 기간 착시 효과를 걷어내고 계산하니 직접적인 저출산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약 10조 원 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또 “OECD 평균보다 부족한 10조 원을 확보해 일·가정 양립과 (현재 8세까지 주는) 아동수당 확대에 집중 투입한다는 전략을 세웠다”며 “재원으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다만 지방교부금 활용의 경우 교육 당국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또 “모든 정책은 부작용이 있고 이해관계가 엇갈린다”며 “그게 두려워 이것저것 조금씩 하다 보면 효과는 안 나고 돈은 많이 든다. 방향을 정확하게 잡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외벌이 가구에서 전업주부의 자녀 양육을 지원할 건지, 아니면 맞벌이 가정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할 것인지를 따져 보면 지금은 후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주거 문제와 관련해선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매년 20만 쌍이 결혼한다면 80%인 16만 쌍 정도는 어떤 형태로든 지원을 받게 해야 정책 체감도를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국토교통부를 가장 많이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에서 ‘결혼 패널티’라고 불리는 소득 제한을 완화하고, ‘결혼 후 몇 년’이 아니라 아이를 기준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해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했다.
‘부처 간 협력’도 지금보다 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토교통부가 주택 공급에만 초점을 맞추면 결과물이 수요자의 눈높이와 어긋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젊은 부부들은 ‘거주할 집’이 아니라 ‘아이를 키울 만한 집’을 원한다”며 “보건복지부 등 유관 부처와 함께 수요자의 선호를 고려한 주택 공급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저출산 정책 동력을 높이기 위해 부총리급 ‘인구부’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을 그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저출산 문제가 몇몇 정책만으로 해결된다면 실무 부처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 그러나 한국은 집값부터 사교육, 일자리, 지방소멸 등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가 중첩돼 있어 장기적 비전을 갖고 여러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위원회 구조가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후임자인 주형환 부위원장에 대해선 “복지부, 국토부, 고용노동부 등에선 의지가 있더라도 재원 문제 때문에 주저하는 정책이 많다”며 “기획재정부 출신인 만큼 재원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면 상당한 성과일 것”이라고 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