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80> 합격 축하 잔치의 광대놀음
영화 ‘왕의 남자’에서 양반집 잔칫날 여장을 한 공길(이준기 분)이 줄타기 공연을 하고 있다. CJ E&M 제공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2005년)는 광대 장생과 공길이 양반집에서 줄타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광대의 연희를 천시하던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양반집에서 광대놀음을 즐기는 경우가 있다. 송만재(宋晩載·1783∼1851)의 시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시인이 읊은 광대놀음은 문희연(聞喜宴)과 관련이 있다. 문희연은 당나라 진사시(進士試) 급제자 발표 뒤 곡강정(曲江亭)에서 연회를 베풀던 곡강연(曲江宴)에서 유래한 것인데, 송나라 때 이를 문희연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진사시 급제자도 합격증서를 받고 삼일유가(三日遊街·3일 동안 거리 행진을 하는 것)한 뒤 집에서 문희연이란 자축연을 열었다. 이때 비단옷에 누런 초립을 쓰고 머리에 비단으로 만든 가짜 꽃을 단 광대들이 공연을 하는데, 줄타기나 땅재주도 그중 일부였다.(京都雜志 ‘遊街’)
영화 속 공길은 남자지만 예쁘장한 용모로 연희 중 여성 역할을 도맡는다. 시인의 연작시에서도 살짝 돌아보기만 해도 모든 사람을 매혹시키는 광대의 아름다운 자태가 그려진다.(제48수) 정약용은 합격 축하 행사로 이런 여장남자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는데(‘玉堂請謁聖放榜, 勿以舞童賜新恩箚子’), 시인 역시 광대놀음을 마냥 좋게만 바라보지 않았다. 광대들의 기예가 졸렬해져야 사려 깊은 나라가 된다고 평한 내용도 있다.(제50수)
시인은 서자로 태어나 뒤늦게 등과한 뒤 미관말직을 전전했다. 큰아들 지정(持鼎)이 1843년 진사시에 급제했지만 문희연을 열어줄 형편이 되지 않아서 그저 시로 읊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跋) 가난한 아버지의 미안한 마음이 광대놀음을 속속들이 읊은 시로 남아 전한다. 아들의 합격을 축하하고 싶은 아버지의 상상 속 문희연인 셈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