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끝자락, 꽃잎 떨어지니 마음은 한결 싱숭생숭.
님은 가고 없는데 달빛 아래 한가로이 걸린 그네,
버들에 매인 말의 게으른 울음소리 바람결에 들리고, 제방 옆에는 텅 빈 꽃배 하나.
취한 듯 나른해진 몸, 온종일 작은 휘장에 머문다.
잠자려 날아든 제비는 은촛대 불빛 밖을 맴돌고, 녹음 우거진 숲에는 꾀꼬리 소리.
지고 남은 꽃마저 이젠 찾을 데가 없네.
(三月暮, 花落更情濃. 人去鞦韆閑掛月, 馬停楊柳捲嘶風. 提畔畵船空. 懨懨醉, 盡日小簾櫳. 宿燕夜歸銀燭外, 流鶯聲在綠陰中. 無處覓殘紅.)
―‘망강남(望江南)’ 오문영(吳文英·약 1200∼1260)
음력 3월의 끝자락이면 봄도 다 저물 시기. 꽃다운 세월을 함께했던 이도 떠나고 꽃잎마저 사그라졌으니 춘삼월 호시절이 다했다는 아쉬움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연인이 떠난 자리에 휑하니 남겨진 건 주인 잃은 그네와 꽃배. 바람결에 들려오는 말 울음조차 활기를 잃었다. 무기력해진 채 휘장 안에 갇혀 지내는 힘겨운 하루하루. 호된 봄앓이가 시작된 듯하다. 잠자리를 찾은 제비가 놀라 달아나는 건 주인공이 지금 불면의 밤을 견디느라 촛불을 환하게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우거진 녹음과 꾀꼬리 소리는 연인을 그리는 헛헛한 마음 탓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심란한 심정과 대조적으로 시 속의 강남 풍광은 차분하고 또 아름답다. 자질자질 잦아드는 꽃자리를 대신한 싱그러운 녹음, 경쾌한 꾀꼬리 소리는 시인의 심미안이 놓치지 않은 뜻밖의 경이이다. ‘망강남’은 곡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