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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걸려 입증된 힉스… 과학은 忍, 忍, 忍[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입력 | 2024-04-25 23:27:00

이기진 교수 그림


물리학자는 실험물리학자와 이론물리학자로 나뉜다. 나는 실험물리학자이고, 블랙홀을 연구하는 옆 연구실 김 교수는 이론물리학자이다. 양자역학이 완성되기 전까진 특별히 둘을 나누지 않았는데, 분야가 다양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X선을 발견한 빌헬름 뢴트겐은 실험물리학자였다. 그는 1868년 취리히연방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 7년 동안 강사와 연구원 생활을 했으며, 이후 여기저기 대학을 옮겨가며 교수로 재직했다. 그리고 1895년 X선을 발견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27년 만에 얻은 성취였다. 그는 그때까지 48편의 논문을 썼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고, X선 발견을 담은 49번째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야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다.

1901년 뢴트겐은 X선을 발견한 공로로 제1회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상금을 몸담고 있는 대학에 기부했고, X선 발견에 대한 특허권도 마다했다. 보통 발견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그것마저도 거부했다. X선 관련 논문들이 쏟아졌지만, 좀 더 젊은 사람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그 자신은 더 이상 X선을 연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뢴트겐은 노벨의 유언 “인류의 복지 향상을 위한 발명이나 발견을 한 사람”에 딱 맞는 모범적인 인물이지 않았을까.

얼마 전 ‘힉스 입자’를 예측해 노벨상을 받은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 교수가 별세했다.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1964년 논문은 그가 35세 때 쓴 것이었다. 영국의 에든버러대에 강사로 있을 때다. 당시에 물리학자들은 세상에 12개의 기본 입자와 4개의 힘이 존재하며, 이 입자와 힘이 우리가 사는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입자들의 존재는 밝혀냈지만 왜 이 입자들이 질량을 가지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때 힉스 박사는 기존의 이론에 허점을 발견하고 입자가 왜 질량을 가지는지를 이론적으로 밝혀냈다. 그의 논문은 질량을 만드는 ‘가상의 입자’가 특별히 존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후에 한국 출신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는 이 입자에 ‘힉스 입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론물리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면 실험물리학자가 실험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 그 이론이 완성된다. 그 후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대형입자가속기를 14년에 걸쳐 건설했다. 참여한 과학자만 6000여 명에 달했고, 약 13조 원이 투자됐다. 그 결과 2012년 7월에 힉스 입자가 발견됐다. 이후 추가 실험과 검증을 거쳐 2013년 3월 공식적으로 힉스 입자의 존재가 공표됐다. 논문이 발표된 지 49년 만에 존재가 증명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힉스 교수는 2013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론물리학자 힉스 교수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본질에 관심이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뒤에 감춰진 이유를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 이면에 감춰진 원리를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과학은 인내가 이끄는 학문이다. 이론이 실험으로 검증되기까지,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수십 년의 탐구 과정 속에서 X선을 발견한 뢴트겐과 35세에 ‘힉스 입자’를 예언하고 그 이론이 입증되기까지 긴 시간을 보낸 힉스, 두 물리학자의 삶의 궤적을 떠올리며 우리나라 과학 정책의 미래를 계획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