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 그림
물리학자는 실험물리학자와 이론물리학자로 나뉜다. 나는 실험물리학자이고, 블랙홀을 연구하는 옆 연구실 김 교수는 이론물리학자이다. 양자역학이 완성되기 전까진 특별히 둘을 나누지 않았는데, 분야가 다양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1901년 뢴트겐은 X선을 발견한 공로로 제1회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상금을 몸담고 있는 대학에 기부했고, X선 발견에 대한 특허권도 마다했다. 보통 발견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그것마저도 거부했다. X선 관련 논문들이 쏟아졌지만, 좀 더 젊은 사람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그 자신은 더 이상 X선을 연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뢴트겐은 노벨의 유언 “인류의 복지 향상을 위한 발명이나 발견을 한 사람”에 딱 맞는 모범적인 인물이지 않았을까.
이론물리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면 실험물리학자가 실험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 그 이론이 완성된다. 그 후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대형입자가속기를 14년에 걸쳐 건설했다. 참여한 과학자만 6000여 명에 달했고, 약 13조 원이 투자됐다. 그 결과 2012년 7월에 힉스 입자가 발견됐다. 이후 추가 실험과 검증을 거쳐 2013년 3월 공식적으로 힉스 입자의 존재가 공표됐다. 논문이 발표된 지 49년 만에 존재가 증명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힉스 교수는 2013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론물리학자 힉스 교수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본질에 관심이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뒤에 감춰진 이유를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 이면에 감춰진 원리를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과학은 인내가 이끄는 학문이다. 이론이 실험으로 검증되기까지,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수십 년의 탐구 과정 속에서 X선을 발견한 뢴트겐과 35세에 ‘힉스 입자’를 예언하고 그 이론이 입증되기까지 긴 시간을 보낸 힉스, 두 물리학자의 삶의 궤적을 떠올리며 우리나라 과학 정책의 미래를 계획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