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그제 정책실장, 수석비서관들과 가진 첫 회의에서 “대통령실의 정치는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 비서들이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또는 대통령실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부정확한 얘기가 산발적으로 (언론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런 경고는 용산발 국정 난맥을 끊어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듯하다.
▷‘말의 기강’을 세우겠다는 첫 지휘 메시지는 공식라인을 건너뛰는 일 없이 업무계통을 정확히 밟으라는 지시이기도 하다. 지난주 불거졌던 ‘박영선 국무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유력 검토’ 보도가 남긴 파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보도된 대로 ‘문제 발언’의 당사자로 지목된 용산 참모는 인사, 정무, 대언론 접촉이 본 업무가 아닌데도 나섰다. 또 휘발성이 강한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의 핵심 요직 발탁 아이디어를 비서실장, 정무수석 등 최고위 참모들조차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언론에 흘렸다.
▷민주당 인사의 총리 발탁이 상상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협치 의지를 밝히고, 국회 제1당이 된 민주당에 의견을 구하기도 전에 공개되면서 일의 순서가 뒤엉켰다. 최고 권부의 일 처리가 느슨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총선을 거치며 얇아진 대통령 지지층의 반발과 실망을 다독이는 사전정지 작업은 할 틈도 없었다. 대통령의 업무가 이렇게 다층적 고려 없이 추진되어도 되나.
▷“(비서실은) 말하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라고 질책한 정 실장은 용산을 어떻게 이끌어 갈까. 그동안 직보(直報)의 형식으로, 다양한 의견 청취라는 이름으로 걸러지지 않은 의견과 정보가 용산 최상층부에 전달된다는 후문이 많았다. 그러던 중 어설픈 언론 플레이로 대통령실의 권위와 기강을 흔든 일이 생겼다. 이런 비공식 정보의 흐름을 교통정리 해내는 것 또한 정 실장이 다짐한 ‘말의 기강’을 잡는 일이다. 그 당사자를 솎아내지 않은 채 용산의 난맥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용산 비서들의 정치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정 실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