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뉴시스
‘절반 이상이 결혼과 출산을 안 할 것이라고 답했다….’
자, 퀴즈다. 언뜻 보면 같은 말 같은데 무엇이 다를까.
정답은 ‘안 해도 된다’와 ‘안 할 것이다’의 차이다. 전자는 결혼과 출산을 안 해도 되고, 해도 된다는 청년이 많았다는 뜻이다. 반면 후자는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청년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안 해도 된다’가 발전하면 결국 ‘안 할 것’이 되겠지만, 결코 두 문장이 같다고 볼 순 없다.
종종 청년들의 결혼·출산관 관련한 설문조사 기사를 보면 이 두 뜻을 혼동해 쓴 곳들이 보인다. 안 해도 된다는 것과, 안 할 것이라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인데 말이다.
갑자기 이런 국어 문법 강의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 20대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깨달은 점 때문이다. 그동안 청년들의 인식을 설문 조사한 기사들을 보며 기자 역시 은연중에 혼동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하니, 당연히 젊은 청년들일수록 결혼과 출산을 안 하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청년이 웨딩드레스 가게 앞을 지나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막상 취재해 보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안 해도 된다’는 청년들은 많았지만, ‘안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청년은 예상외로 드물었다. A 씨(24·여)는 대학 졸업 후 항공업계 취업 준비 중이다. 그는 “제 친구들 70%는 결혼하겠다고 하고 아이도 갖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기자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청년이 더 많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요즘 초등학교의 전교생이 몇 명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 결혼을 안 하는구나’ 싶긴 한데, 적어도 내 주변에 확고한 독신주의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 산하기관 인턴으로 일하며 건축기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인 B 씨(26)는 “주변 지인들이 ‘결혼하고 싶다’ 반, ‘안 하고 싶다’ 반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같다”며 “나도 평생 혼자 살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설문조사나 기사를 보면 온통 부정적인 청년들뿐이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전문대 졸업 후 온라인 스토어에서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C 씨(24·여)는 “나도 창업해 성공하고 싶은 한편으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픈 마음이 있다. 하지만 주변에는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거나 ‘비혼주의자’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아직 안정적으로 이룬 것도 없는데 ‘결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는 건 어쩐지 민망하다. 또 결혼이나 자녀 계획 같은 걸 이야기하면 약간 옛날 사람 같은 느낌도 든다”고 했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을 것”이라며 “일종의 ‘샤이 패밀리스트(숨은 가족주의자)’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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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끝나자 ‘자녀 계획’↑…출산 원하는 청년들 어딘가에
최근 많은 언론에서 기사화된 한 실태조사는 이런 청년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6∼7월 전국 1만2000가구 만 12세 이상 모든 가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17일 공개했는데, 2030 젊은 층에서 자녀 계획이 있다고 밝힌 사람이 그 전 조사인 2020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30대가 전체 응답자의 27.6%, 30세 미만 15.7%로 각각 2020년 조사 값에서 9.4%포인트(2020년 18.2%), 6.8%포인트(8.9%) 오른 것.
이를 두고 ‘출산율이 반등하는 신호’라며 팡파르를 울린 분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히 변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전에 없던 출산 의지가 솟아났을 리 만무하다. 그보다는 원래 출산을 원했거나 할까 말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기다렸다가 자녀 계획을 재개했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 있을 것이다.
실제 2020년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유달리 적긴 했다. 그 전 조사(2015년)와 비교할 때 20% 이상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2015년 조사에서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30대는 33.2%, 30세 미만은 37.5%였다). 자연적으로 떨어졌다기엔 너무 큰 낙폭이었다. 기존에 출산 의지가 있는 청년들이 코로나19라는 사건으로 인해 뜻을 드러내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출산 원하는 청년들 심층 조사…저출산 해법에 새로운 착점 줄 수도
이렇게 결혼과 출산에 우호적인 청년층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안타깝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과 맞닥뜨리면서 ‘할까 말까’ 고민하던 청년 다수가 비혼, 무자녀 대열에 합류한다. ‘코로나 종식 때처럼 환경이 나아지면 다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겠지만, 코로나 종식급 국면 전환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한 아기 엄마가 아기를 안고 육아용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더 늦기 전에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청년들을 찾아 심층 조사해 보기를 권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결국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던 사람들이 안 하고 안 낳기 때문이다. 저출산 원인을 묻는 대규모 객관식 설문조사는 사실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조사 했다 하면 판에 박힌 듯 나오는 집값, 일자리 불안정, 일·가정양립 불가…그 답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를 낳으려거나 혹은 낳으려 했던 사람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면 생각지 못한 착점을 발견할지 모른다. 왜 배우자와 자녀를 원하(했)는지, 어떤 가정을 이루고 싶고 그러자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걸림돌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를 낳고자 하는 청년들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공유하자. 그들이 더는 ‘샤이’로 남아있지 않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