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기업 AI인재 쟁탈전 메타-오픈AI 등 美 기업 자금력 동원… 연봉 수백만 달러 제시하며 인재 영입 중국 내 AI 관련 학과만 2000개… 글로벌 우수 인력 절반 가량 배출 빅테크, 유럽-日서도 인재 확보전… AI 이외 인력-분야 구조조정 불사
《美-中-日-유럽, AI 인재영입 총성 없는 전쟁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전 세계 주요국과 대기업들이 인공지능(AI) 분야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백만 달러의 연봉, 삼고초려 등이 있어야 AI 인재의 낙점을 받을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4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그는 경쟁사로 떠나려는 테슬라 내 AI 인재의 이직을 막기 위해 AI 기술자의 급여를 대폭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AI 개발 속도를 늦추는 주요 제약이 ‘인재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AI 인재 육성과 확보는 비단 머스크만의 고민이 아니다. 전 세계가 AI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AI 인재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AI 업계에서는 ‘인재를 얻는 사람이 모델을 얻고, 모델을 얻는 사람이 세상을 얻는다’는 말이 통용된다.
● 자금력으로 인재 빨아들이는 미국
최근 중국의 과학기술 매체 ‘타이메이티’가 미국과 중국의 AI 분야 기술 기업 각각 16개사의 인재 채용 비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업은 AI 핵심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7억7000만 달러를 썼다. 반면 중국 기업의 지출액은 6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개별 기업으로 따져보면 차이가 더 극명해진다. 최근 ‘AI 인재 전쟁’을 촉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메타는 자사 AI 인재에게 기본 연봉에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포함해 1인당 최대 251만 달러(약 34억6000만 원)를 지급한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156만 달러, 구글도 157만 달러를 보장하며 인재들에게 구애하고 있다.
무조건 많은 돈을 준다고 인재를 모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타이메이티는 “핵심 인재들은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컴퓨팅 인프라를 직장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로 중국 회사들은 당장 AI 인재들이 만족할 만한 장비를 구축할 수 없는 상태다.
실제 올해 1월 메타가 AI 연구를 위해 연말까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칩 H100을 35만 개 구입하겠다고 밝힌 것도 인재 영입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생성형 AI 업계의 떠오르는 회사로 꼽히는 퍼플렉시티의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메타에서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우리가 메타만큼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보유하지 않아 거절당했다”고 토로했다.
● 인재풀 키우며 역전 노리는 中
같은 기간 미국 출신 인재의 비율은 20%에서 18%로 줄었다. 최상위권 인재(학부 기준 상위 2%)로 범위를 좁혀도 중국 출신 연구원의 비율이 2019년(10%)에 비해 2022년(26%)에 2.5배 이상으로 늘었다.
중국 AI 교육의 핵심은 다양성과 확장성이다. 2018년 교육부가 주도한 대학의 ‘AI+X’가 대표적이다. 물리, 의료 등 기초 지식을 갖춘 학생들이 AI를 자신의 전공 분야와 융합시키는 방식이다. AI가 각종 산업 기술과 융합될 것을 고려했다.
명문 공대 칭화대는 2019년 ‘AI반(즈반·智班)’을 만들었다. 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한 석학 야오치즈(姚期智·78) 칭화대 교수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즈’를 따서 지었다. 수학, 물리, 전자공학 등 각 학과의 최고 인재만을 뽑아서 AI 관련 교육을 따로 한다. 야오 교수는 AI 분야에서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를 키우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이 외 베이징대에는 의료와 AI를 접목시킨 지능의학공학과, 하얼빈공대에는 자율 주행에 특화된 스마트차량공학과가 있다.
미국 주요 AI 기업 및 연구소에도 중국 출신 인재가 많다. 2022년 기준 미국에서 일하는 AI 우수 인력 가운데 38%가 중국 출신이었다. 미국 출신(37%)보다 오히려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우수한 중국 AI 인재들의 유입을 막을 수도 없고, 중국의 스파이 활동에도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 유럽-일본도 가세
유럽, 일본 등에서도 AI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미국 AI 회사들이 유럽 곳곳으로 진출하면서 너도나도 인재 모시기에 나섰다.
오픈AI는 지난해 영국 런던, 아일랜드 더블린에 잇달아 사무실을 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런던 중심부에 ‘MS AI 런던’을 개설한다고 8일 밝혔다.
오픈AI는 이달 중 일본 도쿄에 첫 아시아 사무소도 개설하기로 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AI 반도체 팹 네트워크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일본 소프트뱅크와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 또한 이와 별도로 고성능 생성형 AI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 설비에 내년까지 1500억 엔(약 1조370억 원)을 추가로 투자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2일 보도했다.
이 같은 각국의 AI 굴기(崛起)는 자연스레 인재들의 몸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영국에서는 AI 기업 임원의 기본급이 평균 5만∼10만 파운드(약 8500만∼1억7000만 원) 인상됐다.
메타와 오픈AI 등은 핵심 인재들에게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 패키지를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직을 막기 위해 중장기 성과를 평가해 추후 주식으로 보상하는 방식도 도입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 등이 일반 연구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이직이나 잔류를 설득했다는 얘기도 널리 알려졌다.
● 비(非)AI 분야 구조조정
AI 핵심 인재에 대한 투자는 기타 분야의 인력 감축으로 이어진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개발과 핵심 인재를 잡는 데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기존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까지 불사하기 때문이다.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테슬라는 이달 중순 직원들에게 전 세계 직원 중 10%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애플, 구글 모회사 알파벳 등도 500∼1000명가량의 직원을 해고하기로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올 1월 직원들에게 AI 등 몇몇 사업을 우선순위로 거론하며 “이에 대한 투자 역량을 확보하려면 어려운 선택(감원)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