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기상 후 30분간 얼굴에 햇빛 쐐야… 빛 치료용 기기 사용해도 효과 잠자리 들기 3시간 전 조명 어둡게… 수면 습관 들이면 숙면 가능해져 잠 보충하려 주말에 몰아서 잘 때 늦게 일어나도 취침시간은 지켜야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수면 습관을 만들어 규칙적으로 지킬 때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특히 오전에 몸을 빛에 많이 노출시켜 수면 주기를 만들 것을 강조하며 출근길 선글라스는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잠이 보약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숙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깊은 잠을 자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많다.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수면 전문가인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매일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오전 4시 반에 일어난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이다. 숙면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게 바로 생체시계다. 크게 아침형, 저녁형, 중간형으로 나눈다. 취침 시간이 오후 11시 반부터 밤 12시 반까지라면 중간형. 그 이전에 잔다면 아침형, 자정을 훨씬 넘기면 저녁형이다.
중간형이 가장 많지만 최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기기 사용 등으로 저녁형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주 교수는 최근 저녁형 비중이 40% 정도까지 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저녁형의 경우 취침 시간을 미루다 보니 기상 시간이 늦어진다. 생체리듬이 불안정해지면서 수면장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저녁형이라면 무엇보다 기상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몸이 더 피곤하다며 일찍 잠을 청하는 것도 수면의 규칙성을 깰 수 있어 피해야 한다. 똑같은 시간에 침상에 들란 이야기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면 일단 침상을 벗어나 거실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뇌가 더 각성할 수 있기 때문. 잠시 쉬고 잠이 올 것 같으면 침상으로 돌아간다. 이런 행동은 뇌가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주 교수는 “이런 훈련을 한 달 이상 하면 침상에 들 시간이 되면 졸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주 교수는 대체로 매일 7∼8시간 잠잘 것을 권했다. 만약 주중에 잠이 부족하다면 주말에 좀 더 자서 잠을 보충하는 것도 괜찮다. 다만 평소대로 취침 시간을 지키고, 수면 시간의 중간값 차이를 2시간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소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자는 사람이라면 수면 시간 중간값은 오전 3시다. 이 사람이 주말에 오전 2시에 자고 오전 10시에 일어난다면 수면 시간의 중간값은 오전 6시. 두 수면의 시차(사회적 시차)는 3시간이다. 이 경우 평소보다 2시간을 더 잤을 뿐인데, 월요병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 빛 조절은 숙면에 꼭 필요
빛의 강도 조절도 숙면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30분 이상은 햇빛에 얼굴을 노출하는 게 좋다. 날씨가 흐릴 경우에는 햇빛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빛 치료(라이트세러피)용 기기를 사용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름철 한낮 태양광선이 쨍하게 비칠 때가 3만 럭스 이상이다. 빛 치료용 기기는 맑은 낮에 해당하는 1만 럭스 정도다. 흐린 날은 100럭스. 사무실은 보통 300럭스, 화장실은 50∼80럭스다.
빛 치료용 기기 사용법을 설명하는 주은연 교수(오른쪽). 기기를 이마 근처에 두고 광원은 보지 않은 채 책이나 신문 등을 약 30분 동안 읽을 것을 권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반대로 해가 진 후부터는 빛을 제한해야 한다. 주 교수는 일몰 후 거실과 주방을 150럭스 미만으로 설정할 것을 권했다.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부터는 50럭스 이하 어두운 조명만 허용할 것을 권했다. 주 교수는 “종이에 쓰인 글씨가 잘 안 보일 정도로 조명을 제한해야 밤에 잠을 잘 잔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도 숙면에 방해가 된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빛이 눈을 통해 뇌로 전달돼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 밤잠을 방해하는 야식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제거하는 게 좋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야식은 물론이고 가급적 물도 마시지 않아야 한다. 주 교수는 “야식을 하면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뇌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등 주간과 다름없이 활동한다. 이 때문에 숙면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배고픔이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주 교수는 “잠을 자야 할 밤에 신체 활동이 활발하거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것은 ‘가짜 허기’”라고 진단했다. 식사 습관이 흐트러지다 보니 뇌가 배고프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이때 야식을 먹다 보면 심장, 간 등 장기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수면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차들이 있다. 캐모마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차도 취침 3∼4시간 전에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주 교수는 “자기 전에 마시는 차는 수면 중 야뇨를 유발해 오히려 숙면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운동은 잘하면 잠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잘못하면 숙면을 방해한다. 주 교수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두면 수면주기를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라면서도 “다만 잠을 자기 직전에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 무렵에 격렬한 운동을 하면 교감신경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잠들기 어렵게 만든다. 설령 잠을 자더라도 자주 깨게 하므로 숙면을 방해한다. 환한 조명에서 운동하는 것도 몸을 더 깨우는 역할을 한다.
가장 좋은 운동 방법은 따로 있다. 일단 불빛을 낮춘다. 어둑어둑한 가로등 정도 조명이 좋다. 운동 강도는 경도에서 중등도까지가 좋다. 근력 운동보다는 유산소 운동이 수면을 촉발할 수 있다.
● 수면 패턴 무너지면 중병 올 수도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만성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의 수면 패턴이 무너진 게 병의 원인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최근 주 교수를 찾아온 58세 남성 A 씨가 그랬다.
A 씨는 젊을 때부터 코골이가 심했다. 하지만 워낙 쉽게 잠이 들었고 중간에 깨는 일도 거의 없어 수면 장애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다가 가슴이 덜커덩거리는 느낌에 깼다. 숨도 잘 안 쉬어졌다. 한밤중에 응급실을 찾았더니 심장부정맥을 진단 받았다. 나중에 A 씨는 관상동맥 협착도 발견됐고 중증 수면무호흡증도 진단 받았다. 중증 수면무호흡증이 심장질환으로 악화한 사례인 셈. 실제로 이런 경우 심장질환 위험성은 2배 정도 높다.
69세 된 남성 B 씨는 건망증으로 병원에 왔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젊을 때부터 코골이와 무호흡증이 있었다. 기억력 클리닉에서 검사한 결과 B 씨는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B 씨 또한 수면무호흡증이 심한 상태였다.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뇌의 노화가 많이 진행된 데다 뇌혈관까지 손상돼 인지장애로까지 이어진 것.
A 씨와 B 씨 모두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주 교수는 “숙면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다면 수면무호흡증이 원인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수면제 같은 약에만 의존했다가 병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면 증세가 지속된다면 반드시 수면다원검사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