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문화부 차장
나폴레옹은 해외 원정을 떠날 때도 전담 사서가 딸린 ‘이동식 서고’를 끌고 다녔다. 교전국의 군사뿐 아니라 역사, 지리, 종교, 법제 등을 다룬 수백 권의 책을 전장에서 틈틈이 읽기 위해서였다. 영국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앤드루는 “나폴레옹의 천재적 상상력은 책에서 나왔으며, 이것이 그가 비밀 정보보다 책에 더 집중한 이유”라고 말한다.(‘스파이 세계사’·2021년·한울)
나폴레옹 전쟁으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요즘 유튜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의 시청이 늘면서 책을 외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텍스트가 주는 상상력은 여전히 심오하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는 23일 국내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삶을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고,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서율이 떨어지는 건 세계적 추세지만 유독 한국의 하락 속도는 가파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성인 독서율(1년간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을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은 2015년 67.4%에서 2019년 55.7%로 4년 새 11.7%포인트 급락했다. 이에 비해 미국은 같은 기간 72.0%로 변동이 없었다. 급기야 지난해 한국의 성인 독서율은 역대 최저인 43.0%로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지자체들의 ‘한 도시 한 책’ 운동을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서울 성북구는 지역 도서관들을 중심으로 독서 동호회를 활발히 운영하는 한편, 온라인 독서 플랫폼을 통해 작가와의 만남이나 전시회 등 다양한 도서 추천 행사를 벌이고 있다. 책장 펼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정부 못지않게 출판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잠재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독자층을 넓히려는 노력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 요즘 한국 소설 시장이 2030 여성 독자층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세태와 무관치 않다.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고 새로운 책을 만들어 내면서 이 사회의 지성과 문화를 선도하는 희열을 느꼈다”고 자서전에 쓴 고(故) 박맹호 민음사 창립자의 고백을 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떨어뜨리는 ‘인세(판매량 정보) 투명성’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021년 출판계의 불투명한 인세 정산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지만, 여전히 작가들은 자신이 쓴 책의 판매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추진을 놓고 문체부와 출판계가 갈등을 벌이면서 온전한 집계가 이뤄지지 못해서다. 최근에는 출판 예산 삭감을 놓고도 양측의 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독서율 역대 최저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정부와 출판계가 소모적 논란을 멈추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