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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지원 간호조무사 활용 의사에 과도한 ‘보건범죄단속특별조치법’ 적용 논란

입력 | 2024-04-27 11:33:00

법조계 “무면허 의료 행위 ‘업(業)으로’ 하지 않았기에 처벌 배제해야”




의대 증원 사태로 ‘진료지원(PA) 인력’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갖춘 PA간호사·간호조무사의 수술 및 진료 보조 행위에 대한 처벌 여부를 놓고 의료계와 법조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 공백 사태로 전문 의료인력이 부족해 PA간호사 활용이 불가피한 만큼 현실에 맞는 법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4월 8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환자 침상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정부, PA간호사 확대 필요

“일본은 1995년부터 특정 간호 분야에서 수준 높은 간호 실무를 수행하는 ‘인정간호사제도’를 운영 중이고, 이를 위해 19개 분야별로 800시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는 10개 분야에 전문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갖춘 ‘전담간호사’ 공인제도가 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간협)가 4월 18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간호사 역량 혁신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이지아 경희대 간호대학 교수가 PA간호사 활성화와 관련해 선진국 사례를 소개한 내용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탁영란 간협 회장, 대학 간호대 교수들이 참석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복지부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등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전담간호사 확대가 필요하다며 이를 제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담간호사란 전공의의 집단 병원 이탈로 발생한 의료 공백을 메우고자 정부가 의사 업무 일부를 간호사에게 위임하면서 이들에게 붙인 명칭이다. 흔히 ‘PA간호사’ ‘진료지원 인력’으로 불리는데, PA간호사는 수술 보조,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보조 등 의사가 하는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간호사를 뜻한다. 의사에게 주어진 일을 간호사가 하는 것이 현행법상 불법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지만,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으로 의료현장에서 활동하는 PA간호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전국에서 1만 명 넘는 PA간호사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암센터에서 각각 전체 수술의 27.2%, 94.3%에 PA간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전공의 집단 이탈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 수가 더 부족해지고, 이에 따라 진료 공백이 커지면서 그 불이익은 환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공의 이탈로 PA간호사 활용 필요성이 더 크게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인력 부족에 대처하고자 점진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는 한편, 선진국에서 널리 활용 중인 PA간호사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자 검토하고 있다.

4월 18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간호사 역량 혁신 방안’ 정책 토론회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맨 오른쪽)이 인사말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규제 일변도 법 적용

이런 가운데 의료업계에서는 규제 일변도의 법률 및 정책 방향과 관련해 논란이 커지는 상황이다. 의료인은 이미 의료기관 개설 과정에서부터 의료법과 소방법, 기타 특별법에 따른 까다로운 인력 기준, 시설 기준 등을 준수하고 있으며 의료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진료기록부 작성 및 보관, 비급여 의료 행위 제한 등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전국 대다수 의료기관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수술 및 진료 보조 행위에까지 일률적으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 처벌하고 나아가 자격정지, 면허취소, 영업정지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물론 환자 건강을 보호하고 의료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정 수준의 규제가 가해지고 이에 따른 불이익 처분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행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진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처벌과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의사 대부분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행법 및 정책에 대한 의사들 불만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관련 법률 규정 때문이다.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보특법’)은 ‘부정의료업자’에 대해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이와 함께 벌금형을 병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죄 경중에 관계없이 일단 보특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징역형 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밖에 없도록 해놓은 것이다.

여기서 부정의료업자란 무면허 의료 행위를 ‘업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며, 현 판례에 따르면 무자격자로 하여금 의료 행위를 계속·반복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경우 당사자 본인이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부정의료업자로 처벌받을 수 있다. PA간호사·간호조무사에게 수술·진료 보조 등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 일을 하게 하면 병원장과 의사까지 보특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가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을 경우 면허 결격 사유에 해당돼 의사면허를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PA 인력을 활용하는 의사는 보특법을 위반한 것으로 평가돼 아무리 가벼운 사안이라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고, 의료법에 따라 징역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면허가 취소될 수 있으니, PA 인력을 활용하는 의료인은 언제든 면허 취소가 될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된 것이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PA 인력 수가 1만 명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수사기관이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해 현행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최소 의사 수천 명이 자격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같은 법 적용은 보특법 입법 취지에 반하기 때문에 사안 경중에 따라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 행위)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보특법은 1969년 제정 당시 부정식품·부정의약품·부정독극물사범 및 부정의료업자를 처벌해 국민 보건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원래 보특법이 처벌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부정의료업자’란 당시 사회문제였던 이른바 ‘돌팔이 의사’, 즉 의사나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지 않고 암암리에 각종 시술이나 주사치료 같은 의료 행위를 하는 무면허자였다. 그런데 단순한 구조의 법률 규정에 대해 오랜 기간 법원이 해석을 거듭함에 따라 무면허 의료 행위를 시키는 사람이 의사인 경우에도 보특법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례가 형성돼온 것이다.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하는 법 제정 목적에 비춰볼 때 의사라 하더라도 무면허자에게 의료 행위를 반복하도록 지시한다면 보특법 위반으로 처벌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주도하는 진료 및 수술 행위에 PA간호사·간호조무사가 보조적 역할로 참여하는 경우까지 부정의료업자라 보고 보특법을 적용하는 것은 법 제정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난다는 게 의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처럼 보특법은 의사가 아닌 자가 무면허 의료 행위를 ‘업으로’ 할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해놓았다. ‘업으로’ 했는지 여부가 의료법과 달리 보특법을 적용하는 핵심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특법을 적용하려면 적어도 무면허 행위자가 무면허 의료 행위를 ‘업으로’ 한 정황이 있어야 한다. 무면허 의료 행위자 본인이 영업 주체가 돼 주도적이고 자발적이며 독립된 형태로 무면허 의료 행위를 반복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무면허 의료 행위 ‘업으로’ 했는지가 핵심

따라서 무면허 의료 행위자가 면허 행위자에게 종속돼 보조적 업무에 종사했을 뿐이라면 그 보조적 행위 일부가 무면허 의료 행위라 하더라도 그 행위를 ‘업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종업원이 업주에 종속돼 업주의 업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해도 그 종업원이 업을 영위한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의료인 자격이 있는 사람이 면허 내 의료 행위를 업으로 했을 뿐이고, 다만 그 과정에서 업으로 할 자격이나 위치에 있지 않은 무면허자를 일시적으로 면허 내 의료 행위에 대한 보조자로 활용했다면 법리적으로 봐도 ‘업으로’ 무면허 의뢰 행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논리다. 한 의료 전문 변호사는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 행위 처벌은 정상적인 의료 행위가 반복되는 가운데 일부 무면허자가 의료 행위에 참여한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라며 “보특법은 무면허자가 의료 행위를 처음부터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반복해서 실행한 경우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봐야 한다는 점에서 보특법 적용은 이런 법리에 맞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PA 인력 활용에 대한 수사기관의 법 적용이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PA간호사·간호조무사를 활용해 수십 차례 수술 행위를 한 의사에게 단순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 행위) 혐의를 적용해 벌금형을 구형한 사례가 있는 반면, 수술 몇 건에 PA 인력이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보특법을 적용한 사례도 발견된다. 대법원은 1월 11일 어깨 염증 환자에게 체외충격파 시술을 한 간호사와 이를 지시한 의사에 대해 의료법 위반을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전담간호사가 근골격계 체외충격파 시술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던 것이다.

전국 수사기관이 법 적용을 하다 보니 사례나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사안의 경중과 무면허 의료 행위 건수, 의사 개입 여부 등에 따라 의료법이나 보특법 적용 기준을 엄격히 구분하고, 경찰과 검찰의 내부 기준을 통일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적어도 의사가 주도하는 진료 및 수술에서는 ‘돌팔이’가 혼자서 하는 의료 행위에 비해 환자에게 발생하는 보건위생상 위험 가능성이 거의 없고, 환자에게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단순 반복적인 보조 행위나 반복 횟수가 적은 의료 행위에도 보특법을 적용해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PA 인력 합법화와 함께 현행법상 업무 범위 구분이 모호한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역할 범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37호에 실렸습니다〉

최진렬 주간동아 기자 displ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