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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문병기]트럼프 반대한 우크라-틱톡법이 관철된 까닭

입력 | 2024-04-29 03:00:00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존슨은 아주 좋은 사람(good person)이라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당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 대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존슨 의장은 20일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 등 세계 각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담은 ‘안보 지원 패키지’ 예산을 통과시켰다.

통과 당시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 등 친(親)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은 “우크라이나 지원보다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 대처가 먼저”라며 존슨 의장을 해임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미 권력 서열 3위 하원의장 자리가 위태로운 순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존슨 의장을 두둔하며 당내 강경파들을 머쓱하게 했다.


美의회 핵심의원들 초당파로 나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반전이었다. 그는 수차례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했다. 이런 그가 태도를 바꾼 이면에 공화당 중진들의 끈질긴 설득과 중재가 있었다고 미 언론은 전한다.

‘키 맨’ 역할을 한 인물로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꼽힌다. 그는 올 2월 우크라이나를 찾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서 우크라이나가 대출을 받아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수용 의사를 확인한 그레이엄 의원은 미국으로 돌아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설득했고, 이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과로 포장하면서 정치적 타협의 길을 열었다.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도 존슨 의장의 마음을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존슨 의장은 줄곧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반대표를 던져온 골수 고립주의자다. 매콜 위원장은 이런 그를 “예산 통과를 더 늦추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를 돕는 격”이라고 거듭 설득했다. 결국 존슨 의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표결 필요성을 설득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반년 만에 의회 문턱을 넘어섰다.

우크라이나가 미 의회 덕분에 무기 지원을 얻어낸 반면 중국 소셜미디어 틱톡은 의회 때문에 퇴출 위기에 처했다. 틱톡은 미 의회의 강제매각 법안 통과 움직임에도 의회 설득보다는 재무부가 의장을 맡고 있는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와의 협상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워싱턴 정계에서는 틱톡에 투자한 공화당 ‘큰손’ 제프 야스 등의 설득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틱톡 강제매각 법안에 반대하고 나선 만큼 의회가 미 청년층 유권자들이 열광하는 틱톡을 퇴출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하지만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초당적인 대(對)중국 강경파 의원들이 참여하는 비공개 모임을 통해 이른바 ‘선더 런(Thunder run·우레 같은 진격)’ 작전을 짜고 1주일 만에 틱톡 강제매각 법안을 통과시켰다.


의회외교로 고립주의 파고 넘어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라는 공통분모에도 우크라이나와 틱톡의 명운을 가를 두 법안이 통과된 것은 곱씹어 볼 대목이다. 일각에선 공화당 내 고립주의 성향의 ‘트럼피즘(Trumpism)’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개입주의적 외교정책을 지지하는 ‘레이거니즘(Reaganism)’이 혼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의회 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의원들이 나서면 공화당을 장악한 트럼프 전 대통령 반대도 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의미가 있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강화 등 ‘트럼프 2.0’에 대한 우려가 큰 한국이 미 의회를 상대로 한 외교에 소홀해선 안 되는 이유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