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당내 신임이 없으면 언제라도 물러나는 의원내각제 총리의 특성을 고려하면 기시다 총리는 벼랑 끝에 몰렸다. 자민당 내에서 기시다 총리 간판으로는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자민 1당 우위 체제 붕괴될 전조”
시마네현은 1996년 소선거구제 채택 후 일본 47개 광역단체 중 유일하게 자민당 이외 정당이 승리해 본 적이 없는 ‘텃밭 중의 텃밭’이다. 지난해 사망한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전 중의원 의장이 11선, 1980년대 자민당 최대 파벌을 이끌었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가 14선을 역임한 곳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
이런 곳에서 자민당 지지자 26%가 야당을 찍었다는 출구조사(교도통신) 결과가 나오자 자민당은 충격을 받았다. 도쿄15구, 나가사키3구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및 비자금 문제로 자민당 전직이 불명예 퇴진해 자민당이 공천조차 못 했다. 한 자민당 의원은 “이게 현재 민심이다. 지금 총선을 하면 다른 곳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NHK방송은 “정치 불신 마그마가 끓어 올랐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자민당 간사장은 “역풍이 강했다. 비판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였다. 3개 의석을 독식한 입헌민주당 이즈미 겐타(泉健太) 대표는 “조기 해산 뒤 총선을 치러 정권 신임을 묻자”며 대여 공세 수위를 높였다.
● 비자금 안이한 대응이 참패 불러
여당과 밑바닥 민심이 괴리됐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최근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당원과의 대화’ 모임에서 한 당원은 총리 면전에 “총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기시다 총리는 비자금 스캔들 주범을 현 정권과 거리를 둔 아베파, 니카이파로만 돌리면서 연임하려는 태세라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올 10월로 3년 임기가 끝나는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운명도 불투명해졌다. 기시다 총리는 6월에 실시할 1인당 4만 엔(약 36만 원) 소득세 감세, 외교성과 등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재선하려는 생각이지만, 지지율 회복세가 더디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압박이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차기 총리를 맡을 만한 ‘포스트 기시다’가 보이지 않아 견제 움직임이 당장 거세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일 관계는 이번 선거 결과와 별개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 정치는 내정과 관계없이 외교에서는 비교적 일관성을 갖는다”며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특별히 한국에 각을 세우거나 갑자기 전향적으로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민당 내 혼란이 커지고 정권교체 징후 등이 나타난다면 보수 강경파를 중심으로 돌발행동을 할 여지를 배제할 순 없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