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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클래식感]“카네기홀에 어떻게 가죠?” “연습, 연습, 연습”

입력 | 2024-04-29 23:39:00

‘거장 피아니스트의 60가지 연습곡집’을 만든 아농(위쪽 사진)과 그의 연습곡 1번 악보. 동아일보DB


26일 올해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스물한 번째 순서로 열린 홍석원 지휘 광주시립교향악단 콘서트에서는 옛 소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첫 곡으로 연주됐다. 3악장에서 피아니스트 신창용의 두 손이 음계를 따라 빠르게 낮은음과 높은음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쇼스타코비치는 ‘하농’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샤를 루이 아농(1819∼1900)의 ‘거장 피아니스트의 60가지 연습곡집’을 여기서 풍자했다.

아농의 연습곡집은 손가락 힘을 기르기에 그만이라고 평가된다.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아농 연습곡집이 20세기 초 러시아 음악원들의 의무 평가곡이었기에 러시아가 걸출한 피아니스트들을 낳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곡은 왼손과 오른손이 같은 음계로 단조롭게 오르내리기 때문에 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고역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올해 애플뮤직 ‘클래시컬 세션’에서 공개한 연주에는 아농의 ‘그레그와의 당나귀 론도’와 체르니의 ‘로드 변주곡’이 있다. 손열음은 “어렸을 때 재미없게 친 연습곡들의 작곡가이지만 연습곡뿐 아니라 아름다운 곡도 많다”고 전했다.

드뷔시의 피아노곡집 ‘어린이 차지’ 첫 곡 제목은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다. 아농 연습곡집을 연상시킬 정도로 단조롭게 오가는 음계가 특징이다.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은 이탈리아 작곡가 클레멘티의 연습곡으로 ‘예술의 신 아폴로와 뮤즈들에게 바쳐진 파르나소스 봉우리로 오르는 발걸음’을 뜻한다. 피아노 연습에 매여 지겨워하는 어린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이 곡에서 그려진다.

“하루 연습을 빼먹으면 나 자신이 알고, 이틀 연습을 안 하면 비평가들이 알고, 사흘 안 하면 세상이 다 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에 대해서는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연주가라면 누구나 이 말을 금언처럼 외우고 있다. 대연주가에게 ‘카네기홀로 어떻게 가죠’라고 묻자 “연습, 연습, 연습”이라고 답했다는 얘기도 있다. 역시 누가 한 말인지는 엇갈리지만 연주가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이처럼 연습은 의무이자 벗어나기 힘든 운명이다.

대첼리스트를 넘어 첼로라는 악기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은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1876∼1973)는 젊었을 때 산을 오르다가 굴러떨어지는 돌에 왼손을 맞았다. ‘이제 연주를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연습에서 벗어나겠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훗날 회상했다. 그런 카살스는 95세 때에도 매일 세 시간씩 연습했다. 한 기자가 “지금도 그렇게 매일 연습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연습하면 실력이 느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답했다.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음반사 데카에서 내놓은 쇼팽 연습곡집이 음반전문지 그래머폰의 ‘이달의 녹음’으로 선정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쇼팽 연습곡집 Op. 10과 Op. 25는 피아니스트가 마주치는 여러 기술적 도전에 응할 수 있도록 작곡되었을 뿐 아니라 한 곡 한 곡이 예술적으로도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하도록 설계됐다.

임윤찬은 지난달 손에 무리가 생겼다며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리사이틀 등 몇몇 연주를 취소했다. 쇼팽 연습곡집 발매를 맞아 가진 줌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1, 2주를 쉬니 손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리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절하면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속에 들어가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했던 그의 열정이 자칫 손의 무리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안락의자에 파묻힌 마음 편한 감상자들은 대부분 연주자의 내면과 예술성에 대해서부터 얘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만 시간을 쌓아 올린 연주자의 땀과 고독한 연습이 있다. 유명 연주자뿐 아니라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걷는 수많은 연주자와 그 지망생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도 음악 팬들에게 꼭 필요한 역할일 것이다. 아폴로 신과 아홉 명 뮤즈가 기다리고 있는 파르나소스 봉우리에 그 연주가들 모두가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 과정부터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우리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