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피아니스트의 60가지 연습곡집’을 만든 아농(위쪽 사진)과 그의 연습곡 1번 악보. 동아일보DB
26일 올해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스물한 번째 순서로 열린 홍석원 지휘 광주시립교향악단 콘서트에서는 옛 소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첫 곡으로 연주됐다. 3악장에서 피아니스트 신창용의 두 손이 음계를 따라 빠르게 낮은음과 높은음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쇼스타코비치는 ‘하농’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샤를 루이 아농(1819∼1900)의 ‘거장 피아니스트의 60가지 연습곡집’을 여기서 풍자했다.
아농의 연습곡집은 손가락 힘을 기르기에 그만이라고 평가된다.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아농 연습곡집이 20세기 초 러시아 음악원들의 의무 평가곡이었기에 러시아가 걸출한 피아니스트들을 낳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곡은 왼손과 오른손이 같은 음계로 단조롭게 오르내리기 때문에 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고역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올해 애플뮤직 ‘클래시컬 세션’에서 공개한 연주에는 아농의 ‘그레그와의 당나귀 론도’와 체르니의 ‘로드 변주곡’이 있다. 손열음은 “어렸을 때 재미없게 친 연습곡들의 작곡가이지만 연습곡뿐 아니라 아름다운 곡도 많다”고 전했다.
“하루 연습을 빼먹으면 나 자신이 알고, 이틀 연습을 안 하면 비평가들이 알고, 사흘 안 하면 세상이 다 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에 대해서는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연주가라면 누구나 이 말을 금언처럼 외우고 있다. 대연주가에게 ‘카네기홀로 어떻게 가죠’라고 묻자 “연습, 연습, 연습”이라고 답했다는 얘기도 있다. 역시 누가 한 말인지는 엇갈리지만 연주가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이처럼 연습은 의무이자 벗어나기 힘든 운명이다.
대첼리스트를 넘어 첼로라는 악기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은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1876∼1973)는 젊었을 때 산을 오르다가 굴러떨어지는 돌에 왼손을 맞았다. ‘이제 연주를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연습에서 벗어나겠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훗날 회상했다. 그런 카살스는 95세 때에도 매일 세 시간씩 연습했다. 한 기자가 “지금도 그렇게 매일 연습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연습하면 실력이 느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답했다.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음반사 데카에서 내놓은 쇼팽 연습곡집이 음반전문지 그래머폰의 ‘이달의 녹음’으로 선정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쇼팽 연습곡집 Op. 10과 Op. 25는 피아니스트가 마주치는 여러 기술적 도전에 응할 수 있도록 작곡되었을 뿐 아니라 한 곡 한 곡이 예술적으로도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하도록 설계됐다.
임윤찬은 지난달 손에 무리가 생겼다며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리사이틀 등 몇몇 연주를 취소했다. 쇼팽 연습곡집 발매를 맞아 가진 줌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1, 2주를 쉬니 손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리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절하면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속에 들어가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했던 그의 열정이 자칫 손의 무리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