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교수 판결로 본 中 수법 750만원 계약 맡기며 신뢰 형성… 해외학자 ‘천인계획’ 참여 유도 연구자료 中서 실시간 들여다봐… ‘라이다’ 등 신기술 72건 빼돌려
‘라이다(LiDAR) 센서 등 자율주행 특허 9건 제공. 5년간 2380만 위안(약 40억4600만 원) 지급.’
● 소액 연구로 신뢰 쌓다가 수십억 원 계약
이 교수에게 중국 충칭이공대의 한 교수가 천인계획 참여를 제안한 건 2016년 5월이었다. 두 달 후 이 교수가 이를 수락하고 정식으로 참여 신청서를 보냈고, 중국 정부는 2017년 7월 그를 천인계획 대상으로 최종 선정했다.
계약 내용은 2017년 1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5년간 이 교수가 충칭이공대 연구센터 주임교수를 맡아 라이다와 지능형 광 노드, 알고리즘 등 자율주행 핵심 기술 3개 분야의 연구팀을 이끄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9개의 특허를 신청하고 3개의 논문을 써서 그 권리를 충칭이공대에 귀속시키기로 했다. 이 교수가 약속받은 돈은 연구지원금과 플랫폼 개설 등 경비(27억2000만 원) 외에도 5년 치 연봉 9억3500만 원과 생활 정착 보조금 3억4000만 원, 근무보조금 5100만 원 등이었다.
계약서에는 이 교수가 현지 연구팀을 지휘하기로 돼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고 재판부는 봤다. 국내 KAIST 연구진이 연구 자료를 해외 클라우드 서버에 올리면 이를 중국 충칭이공대 연구진이 실시간으로 접속해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것. 이 교수의 2017년 12월 중국 현지 파워포인트(PPT) 자료에는 ‘KAIST의 자원을 활용해 연구를 실행하겠다’는 취지의 내용도 있었다. 재판부는 “실력과 경험이 부족한 충칭이공대 연구원만으로는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 국내 기술을 유출했다”고 판단했다.
● 비공개 신기술 등 72건, 해외 서버로 실시간 공유
판결문에 따르면 이 교수는 2018년 12월경 KAIST에 이 교수의 기술유출 의혹 민원이 접수돼 감사가 시작되자 충칭이공대 측과 짜고 서류를 꾸미기까지 했다. 연구 성과를 KAIST와 충칭이공대가 절반씩 나눠 갖는다는 내용의 허위 서류였다. 연구비로 8000만 원만 지급받았다고 축소 신고하기도 했다. 또 KAIST 측이 ‘라이다는 국가 핵심기술이므로 중국 측과 함께 연구하지 말라’는 취지로 요청하자 이 교수는 연구 분야를 광통신기술(LiFi)로 바꾼 것처럼 꾸민 서류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이 교수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높아지자 2018년 이를 종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상은 더 공격적으로 기술 유출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외신은 중국 정부가 2020년부터 천인계획을 ‘치밍(Qiming)’으로 이름을 바꿔 해외 연구진을 영입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은 “중국 정부의 계획엔 해당 국가의 기술을 빼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미국처럼 연구윤리 지침과 해외 자금 지원에 따른 보고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인계획(千人計劃)중국이 해외 고급 인재 2000명을 영입하겠다며 2008∼2018년 추진한 인력 양성 제도. 2020년경부터 ‘치밍(Qiming)’으로 이름을 바꿔 비슷한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