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성물 경배’의 경제학 예수가 썼다고 알려진 가시관…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구입 4000억원 들여 보관할 성당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kg당 100만원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가시면류관을 모시기 위해 1248년 완공한 파리 생트샤폘 성당. 양정무 교수 제공
《중세 미술의 총아라면 고딕 성당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파리 시테섬에 자리한 생트샤펠(Sainte-Chapelle) 성당은 우아함과 화려함에서 압도적인 미를 보여준다. 혹시 고딕미술이 고딕체 글씨처럼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하면 완전 오산이다. 생트샤펠 안에 들어가면 화려하고 환상적인 고딕 세계에 넋을 잃고 만다. 생트샤펠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길이 30m, 폭 17m로 건축면적이 510㎡ 정도의 작은 성당이다. 하지만 천장은 높아 20m에 이르는데, 놀랍게도 천장을 받치는 벽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돌을 철근처럼 얇은 기둥으로 만든 다음 벽면을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돌을 이용해 철골 구조를 짜낸 것인데, 자신감 넘치는 석축 기술에 경의를 보내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 썼다고 알려진 가시면류관.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1239년 구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AP 뉴시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여전히 수천억 원이 믿기지 않는다면 최근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재건 비용을 참고하면 된다. 생트샤펠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은 2019년 4월 15일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내외부 재건에 1조 원이 훌쩍 넘는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한편 노트르담 성당 화재 때 함께 다뤄진 중요한 속보가 있다. 바로 ‘예수의 가시관은 온전한가?’라는 뉴스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랑스의 국보 중 국보인 예수의 가시관은 생트샤펠에 안치돼 있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노트르담 성당으로 옮겨져 보관되었기 때문이었다. 2019년 화재 때 가시관은 사제들의 재빠른 대처로 화마를 피했다. 성당 복원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이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는 진위도 확인할 수 없는 성물과 그것을 보관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쓴 중세인들이 황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생트샤펠에서 목격하듯이 이들이 남긴 고딕 건축과 미술은 너무나 위대해서 ‘중세=암흑기’라는 등식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생트샤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이들의 높은 정신성을 상징하고, 이를 완벽하게 구현시킨 능력은 이들의 놀라운 자본력을 증명한다.
이런 수준 높은 미술품이 당당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는 과거를 새롭게 재인식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보니 루이 9세가 성물과 생트샤펠에 투여한 천문학적인 돈이 헛되게 보이기는커녕 아주 스마트한 투자로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