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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한 이유[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5〉

입력 | 2024-04-30 23:03:00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

―허명행 ‘범죄도시4’







개봉 첫날 82만 명. 5일 차에 400만 돌파. ‘범죄도시4’는 보통의 영화라면 상상하기 힘든 성적으로 문을 열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극장 관객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거둔 성적인지라 그 성적은 더욱 놀랍다. 5월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같은 연휴가 대목으로 이어질 걸 기대한다며 벌써부터 1000만이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벌써 4편이나 나왔으니 더 할 게 남았을까 싶지만 마동석은 이 시리즈를 8편까지 이미 기획해 놨다고 한다. 그럼 4편은 과연 새로울까. 사실 ‘범죄도시’는 첫 회가 새로웠고 그 후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서사의 반복에 가깝다. 마석도라는 엄청난 괴력을 가진 형사가 극강의 빌런들을 때려잡는 이야기.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범죄도시’는 이토록 연달아 성공을 거뒀을까.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 ‘범죄도시4’에서 완력으로 떼버린 철창 앞에서 마약범이 “왜 철창이 떨어져 있지?” 하고 의아해할 때 마석도가 툭 던지는 이 말은 그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한다. 극악한 범죄자들을 완력으로 시원하게 제압하는 마석도라는 캐릭터의 판타지가 그것이다. 무식하지만 약자를 위하고 빌런 앞에서는 무자비한 독보적인 캐릭터. 관객들은 곰 같은 덩치에 걸맞은 웃음과 액션의 핵펀치를 날리는 이 서민 영웅 앞에서 간만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하지만 잇따른 흥행의 이유에는 1000만 관객 영화 같은 엄청난 숫자가 주는 막연한 기대도 한몫을 차지한다. 그렇게 많이 봤을 때는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영화를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볼만한 영화를 선택해 수치가 올라가는 게 아니고, 높은 수치가 볼만한 영화를 만드는 전도된 흐름이랄까. 화려한 숫자들이 압도하는 세상 속에서 숫자 너머의 진가를 보는 눈이 더욱 필요해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