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치권 말뿐인 ‘규제 혁신’ 지자체 규제, 3만9487→4만164건 226개 시군구 중 규제 감소 ‘0곳’ 중앙부처도 4.2% 늘려 4만7640건
30일 동아일보가 연세대 이정욱·홍순만 교수 공동 연구팀,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솔루션 기업 씨지인사이드와 공동 분석한 결과 지자체의 총규제는 지난해 말 4만164건으로 집계됐다. 이번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말(3만9487건)보다 1.7% 늘었다. 특히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조례 및 규칙의 총 숫자가 줄어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전체 조례와 규칙들의 숫자가 5% 넘게 늘어난 지자체도 21곳에 달했다. 전체 지자체의 약 10%에 이르는 규모다.
이정욱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는 “정부와 정치권 모두 겉으로는 규제 혁신을 외치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능력과 노력은 크게 부족하다”며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내세웠던 ‘규제 관리 고도화’ 공약도 그간의 규제 개혁이 충분치 않았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첫 회담에도 규제 혁신은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앞으로 여야 정치권이 기업과 시민의 발목을 잡는 규제 해결을 적극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자체 규제 4만164건… ‘새벽배송’ 규제 풀 권한 있는줄도 몰라
[정부-지자체 규제 다 늘었다]
기초단체 “강원도 조례로 금지돼”
강원도 “정부 법령 때문에 안돼”… 정부 “기초단체에 규제 풀 권한”
지자체, 법령 개정돼도 완화 소극적… 고시-조례 통한 ‘그림자 규제’ 양산도
“강원도 조례 때문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기초단체 “강원도 조례로 금지돼”
강원도 “정부 법령 때문에 안돼”… 정부 “기초단체에 규제 풀 권한”
지자체, 법령 개정돼도 완화 소극적… 고시-조례 통한 ‘그림자 규제’ 양산도
이는 지방정부의 규제 개혁이 왜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 지자체가 들고 있는 규제는 상당히 많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자신들의 권한이라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과도한 규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상위 법령을 개선해도 실제 지방에서 적용되는 하부 규제에는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고, 지자체가 저마다 제각각의 규제로 기업과 주민들의 혼란을 자초하는 일도 많다. 규제 개혁이 피부에 와닿게 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지자체 단위에서도 개선 작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상위 법령 바뀌어도 지자체는 규제 지속
현행 법령상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자체들이 나서야 한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시장·군수·구청장 등이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의 범위에서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고만 규정할 뿐 영업시간 제한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기초지자체장의 판단으로 얼마든지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새벽배송 서비스를 가능하도록 한 지자체는 아직 한 곳도 없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 서비스는 지자체가 결정하면 바로 가능한데도 현장에선 이를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고시, 조례 등 각종 ‘그림자 규제’ 양산
현장에서는 이처럼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지방정부의 각종 조례나 법령의 취지와 동떨어진 고시, 즉 ‘그림자 규제’가 기업들을 더 어렵게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숨은 규제들은 중앙정부 차원의 손길이 뻗치지 않다 보니 정부 부처가 막상 법규를 개선해도 지자체 규제는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홍순만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사례처럼 지자체 규제 권한이 상당히 큰 데다, 훈령 예규 고시 등 지방정부가 들고 있는 ‘그림자 규제’도 상당히 많다”며 “각 지자체의 규제 강도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규제지도’ 등을 활용해서라도 기업과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규제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부 지자체가 규제에 대한 균형 감각 없이 규제를 만들어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며 “일부 규제는 상위 법령의 취지를 훼손하는 과도한 규제가 아닌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세종=이호 기자 number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