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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정부 평행선에 “2000명 근거 뭐냐” 법원이 물었다

입력 | 2024-05-01 17:19:00


법원이 정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를 향해 “5월 중순까지 대학별 모집인원을 최종 승인하지 말라”며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속전속결로 증원 절차를 마무리하려 했던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자료를 제출하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지만 정책적 판단의 영역에 사법부가 개입하려는 것에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반면 의사단체는 “제출 자료를 통해 주먹구구식으로 증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의대생 등도 증원 당사자 인정 가능성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의대생 등을 ‘제3자 자격요건’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정할지가 첫 번째 쟁점이라고 보고 있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 그동안 제기된 집행정지 신청 8건 중 7건은 의대생과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등이 직접적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됐고 나머지 1건은 진행 중이다. 의대 정원 증원 등 정부 정책의 당사자는 의대를 보유한 대학의 총장이기 때문에 교수나 전공의, 의대생은 처음부터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경우에 따라 의대생 등에게도 당사자 적격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재판부는 “정원이 늘면 직접 당사자인 대학 총장이 법적 다툼을 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경우 다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또 “모든 행정 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 최근 판례를 보면 제3자의 원고 자격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장을 맡은 구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 법원의 각하 결정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00명 근거 판단할 것”

의대생 등이 당사자로 인정될 경우 다음 쟁점은 정부의 ‘2000명 증원’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는지가 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정부에 “10일까지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가 있는지 회의록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또 13~18일 결론내겠다면서 “법원 결론 전 최종 승인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인원을 2000명으로 결정한 정부 정책의 근거를 자세히 따져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재판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의사 수 부족을 추계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의 세 보고서를 바탕으로 (2000명 증원이란) 정책적 판단을 한 것이며 회의록 등 근거 자료는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세 보고서는 이미 재판부에 제출됐으며 보고서 저자들도 2000명 증원과 다른 의견을 냈다는 점을 들며 “회의록 등이 제출되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증원이 결정됐는지 밝혀질 것”이란 입장이다. 최창민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늘려도 문제 없다’는 총장 말만 듣고 무리한 증원을 추진했는지 자료를 통해 확인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정원이 늘어난 대학 32곳 중 의학전문대학원이라 대교협 신청 대상이 아닌 차의과대를 제외하고 31곳이 1일까지 내년도 모집인원을 제출했다. 차의과대와 신청 규모를 비공개한 순천향대가 대부분의 사립대처럼 배정된 정원을 모두 선발할 경우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1509명 늘게 된다.

교육부는 법원이 이달 중순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이달 말 예정대로 각 대학이 변경된 정원을 공고하고 대입전형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각 대학은 의대 증원 결정 전 모집인원에 따라 수시 모집요강을 발표하게 된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