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원내대표설… ‘도로친박당’ 다시 보는 듯 탄핵 전 정진석 “다음 대통령들도 하야” 경고 윤 대통령처럼 지지율 폭락한 이명박 대통령 친서민 국정기조-탕평인사로 위기 극복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역사에 답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17번이나 완독했다는 역사서 ‘자치통감’까지 안 읽어도, 과거 대통령 행적만 돌아봐도 윤석열 대통령은 위기 극복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김대중(DJ),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겉모습만, 그것도 변칙적으로 따라가는 듯하다. 2000년 집권 3년 차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맞은 DJ처럼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을 가졌으되 DJ와 달리 경청은커녕 야당 대표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2016년 박 전 대통령처럼 윤 대통령이 내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참패 소회를 밝히고 친윤(친윤석열) 비서실장을 앉힌 것도 위험하다. 여당에서 원로의 관리형 비상대책위원장을 모신 것도 모자라 친윤 원내대표 설이 끈질기게 나오는 것도 기시감을 일으킨다. “나를 내시라고 불러도 좋다”던 ‘도로친박당’ 대표는 ‘당정청 한 몸’을 위해 단식까지 불사했지만 결국 불행한 파국을 맞고 말았다.
첫째, 강부자(강남 땅부자) 인사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출발해 부자 정권 낙인이 찍힌 점이다. 대통령 부인의 친인척 관련 사건이 끊이지 않은 것도 공교롭다.
둘째, ‘불통 대통령’도 닮은꼴이다. MB 역시 “나는 정치 안 한다”며 뺄셈 인사와 공천으로 선거연합을 해체해 오만과 불통 소리를 들었다. MB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윤 대통령이 영수회담에서 말했다는 “내가 수사해봐서 아는데…”도 맥락이 같다.
무엇보다 취임 첫해부터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는 게 슬픈 공통점이다. MB는 MBC ‘PD수첩-광우병’이 촉발시킨 촛불시위가 터지면서 취임 석 달 만에 국정 지지율 21%로 추락했다(갤럽). 윤 대통령이 취임 100일도 안 돼 지지율 28%까지 주저앉았을 때는 부정평가 이유 1위가 인사, 2위가 ‘경제·민생을 살피지 않는다’였다. 비우호적 방송 환경과 좌파 이권 네트워크의 선전선동 역시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MB는 넉 달 만에 30%대 지지율을 회복했다. 2010년엔 49%까지 올랐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으며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MB에게는 “여론조사 결과 대선 지지자의 상당수가 이탈했다”며 국정 기조 전환을 건의한 참모진이 있었다. 그 결과 중도 실용과 ‘따뜻한 자유주의’를 선언한 2009년 8·15 경축사가 나왔고 진보 진영의 제안을 채택한 서민금융제도, 든든학자금, 보금자리주택 등 친서민 정책이 이어져 문재인 전 대통령의 3년 차보다 높은 40%대 후반 지지율을 구가할 수 있었던 거다.
국정 기조 전환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인사를 통한 가시적 변화다. 윤 대통령은 능력만 본다고 강조했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검찰과 대통령 동창 그리고 대통령 부인의 측근 빼면, 없다. 2010년 최초의 전남 출신 총리 김황식을 내정할 때 MB는 이재오 특임장관을 야당에 보내 ‘동의’를 받아오게 했다. 친박(친박근혜)이라는 당내 야당과 공존한 것도 넓게 보면 협치다.
윤 대통령이 지지율에 목매달아야 할 이유는 국정 동력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3년은 너무 길다’며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세력이 기세등등하기 때문이다. 벌써 야권 일각에선 대통령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론을 쏟아내고 있다. 거대야당에 신뢰할 만한 대통령감이 있으면 또 몰라도 윤 대통령을 뽑았던 다수 국민은 불안하고 답답하다.
글로벌 불평등이 격해지며 민주적 자본주의가 위기인 상황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고물가 저성장으로 살림이 팍팍해진 현실에서 “과도한 재정 중독을 해소하는 과정에 살피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윤 대통령의 설교는 1도 와닿지 않는다. 태도와 소통 방식뿐 아니라 MB 같은 가시적 변화가 절박하고 시급하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