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석탄시대’展 한때 300곳 넘던 탄광, 3곳 남아 韓산업화 이끈 석탄의 역사 조명 광부-탄광 마을 생활상 등 다뤄… “석탄산업의 유산 되짚어보기를”
1962년 강원 삼척시 도계광업소에서 광부들이 석탄을 캐기 위해 지하 갱도를 뚫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죽을 고비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광산 덕분에 자녀 셋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광산은 제게 살아가는 힘을 줬습니다.”
컴컴한 탄광 속에서 꼬박 37년. 일찍이 가정을 꾸려 23세이던 1986년부터 지하 1000m 깊이의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다가 지난해 퇴직한 이재대 씨(61)는 이렇게 말했다. 15년 전 발파 작업 도중 탄가루가 쏟아지면서 막장에 갇힐 뻔하기도 했지만, 탄광 덕분에 그간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고. 체감 온도 40도의 끔찍한 더위도, 날아다니는 석탄 가루도 이젠 추억이 됐다. 그가 일했던 강원 태백시 장성광업소는 다음 달 문을 닫는다. “오랜 시간 몸담은 직장이 없어진다고 하니 마음이 먹먹합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석탄은 석유를 능가하는 핵심 에너지원이었다. 1960년대 경제 개발에 이어 1970년대 오일 쇼크 때도 국가 경제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했다. 그러나 값싼 수입 석탄에 비해 국내 탄광의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탄광 수가 지속적으로 줄었다. 정부의 석탄 증산 정책으로 1988년 347개에 달했던 국내 탄광 수는 한 자릿수로 줄었다. 1986년 6만8861명에 달했던 탄광 근로자 수도 현재 1000여 명에 불과하다.
1일 대한석탄공사에 따르면 국내에 남은 탄광은 3개다. 이 가운데 국내 최대 탄광으로 1936년 문을 연 태백 장성광업소가 6월 30일 문을 닫는다. 내년 6월 강원 삼척시 도계광업소마저 폐광되면 국내에서 공영 탄광은 사라지게 된다. 국내 유일의 민영 탄광인 삼척 경동 상덕광업소는 아직 폐광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석탄시대’ 특별전에 전시된 1960년대 ‘증산보국’ 편액과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충남 보령시 동명광업소장에게 수여한 훈장증(노란색 원). 훈장증은 당시 국가 경제에서 탄광이 차지한 위상을 보여 준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됐다. 프롤로그에선 석탄의 형성부터 산업혁명까지의 역사를 소개한다. 태백에서 채탄된 약 1m 크기의 무연탄과 수억 년 전 경북 문경과 충남 보령에서 자생한 식물 화석을 선보인다. 2부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탄광 여성 노동자나 광부의 도시락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에필로그에선 폐광 이후 남겨진 석탄 산업유산을 문화산업지역으로 활용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광부 화가’로 불린 황재형 작가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불순물을 골라내는 여성 광부를 그린 ‘선탄부’, 헤드랜턴을 쓴 채 어두운 갱도에서 밥을 먹는 광부들을 묘사한 ‘식사’ 등을 선보인다. 압축된 공기를 동력으로 암벽에 구멍을 뚫는 2.3m 높이의 착암기 실물과 광부들의 작업 영상도 볼만하다. 이 밖에 연탄 비누를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우리에게 남겨진 석탄 산업의 유산과 뜨거웠던 석탄 시대의 기억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무료.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