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업종이 코인 매매인 업체들 정보처리업으로 분류 ‘특례’ 선정 “병역특례 코인 천국” 채용공고도 병무청 “전수조사해 위반땐 고발”
“코인으로 돈 버는 얘기만 할 수 있는 천국.” ―가상자산 운용사 A사
“가상자산 거래 경험 있는 분.”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 C사
국내 가상자산 업체가 올린 채용 공고다. 얼핏 숙련된 트레이더를 뽑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을 모집하는 글이었다. 병역특례는 군생활 대신 산업체에서 근무하며 병역 의무를 대행하는 제도다. 정부 지침상 가상자산 매매 및 중개업체는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될 수 없는데도, 유명 코인 거래소와 운용사가 버젓이 ‘병역특례’를 내세워 사람을 뽑고 있는 것이다. 병역지정업체 선정과 심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취재팀이 병무청 선정 병역지정업체 8780곳(지난달 30일 기준)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 최소 6곳이 가상자산 매매와 중개를 주력으로 삼은 업체로 나타났다. 이 중엔 가상자산 중개를 담당하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물론 가상자산 컨설팅, 위탁운용, 자동매매 프로그램 등의 업무를 주로 하는 업체들도 포함돼 있다.
이는 주 업종을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서비스’ 등으로 바꿔서 병역지정업체로 신청하면 심사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인 매매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이런 ‘우회 신청’이 가능한 것이다.
유명 코인 거래소인 C사도 ‘소프트웨어 개발업’으로 주 업종을 신고해 2017년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됐다. 이후 매년 1∼9월 병무청이 실시하는 실태 점검에서도 지정이 취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병역지정업체는 병역특례 요원 채용 공고에 대상 직군을 ‘트레이더’로 명기하기까지 했다. 가상자산 운용사 A사는 ‘병역특례 가능’이라는 문구를 앞세운 공고에 “개인 트레이딩을 이미 하고 있지만 혼자 하는 게 재미가 없는 분” “실력은 좋은데 시드(종잣돈)가 부족해서 손해 본다는 확신이 드는 분” 등의 자격요건을 적어놨다. A사도 ‘소프트웨어 개발’로 주 업종을 신고해 2018년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된 사례다. 법인 등기상 설립 목적을 ‘자산 운용 및 컨설팅’으로 신고했는데도 병무청의 실태 조사를 간단히 통과했다. A사 측은 “해당 공고는 실수였다. 현재 근무 중인 병역특례 요원 3명은 모두 코인 거래가 아닌 개발 직군에 배치돼 있다”고 해명했다.
● ‘테라 사태’ 관련 업체도 병역특례
전문가들은 코인 관련 업체를 일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분류해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건 명백한 관리 부실이라고 지적했다. 예자선 경제민주주의21 금융사기감시센터장(변호사)은 "가상자산 관련 회사에서 병역특례 요원들이 내부에서 실제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전문가인 변창호 코인사관학교 대표는 “코인 업체가 코인 거래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해서 주 업종을 ‘개발업’으로 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병역특례가 만연한 현실 속에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