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가족들이 차려준 생일상을 선물 받았다. 따뜻한 밥을 먹으며 나 사랑받고 있구나 행복해했다. 문득 스물다섯 살 생일이 떠올랐다. 내 생일 즈음에는 벚꽃이 봄눈처럼 흩날렸다. 그러나 정작 학창 시절에는 생일을 편히 누려본 적이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늘 생일은 시험 기간이라서 공부하기 바빴다. 특히나 대학 시절에는 학비를 버느라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해야 했기에 더욱이 바빴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창밖은 봄. 하지만 한가하게 꽃이나 볼 여유가 없었다. 밤을 새우며 시험 공부와 취업 준비 뭐든 하고는 있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생일이라는 감흥도 없이 나는 시들어 있었다. 그때 친한 후배가 잠깐 학관 휴게실에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전 어제 시험 끝났거든요. 언니 생일은 항상 시험기간이라 제대로 축하도 못 받잖아요. 미역국 먹으면 시험 미끄러진다는 거 그거 다 미신이야. 언니는 무슨 시험이든 잘 볼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후배가 싹싹하게 조잘거리며 층층이 반찬통을 꺼냈다. 꽃잎처럼 동그랗게 모인 밥과 계란말이와 반찬들, 그리고 미역국. “좋은 날 잘 태어났어요.”
후배와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따뜻한 흰밥에 미역국을 떠먹으며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인지. 내 앞에 너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고마워.” 고맙단 말로는 턱 없이 부족한 고마움을 꼭꼭 곱씹으며 도시락을 먹었다. 태어나길 잘했다. 힘내야지. 잊지 못할 생일선물이었다.
도시락을 나눠 먹고 같이 교정을 걸었던 후배는 잘 살고 있을까. 흩날리던 벚꽃 눈을 맞으며 걷던 우리. 따스하게 등을 안아 주던 봄볕에 담담한 척 먹먹했던 걸음을 기억할까. 그렇게 발맘발맘 걷다 보니 끝없는 터널 같던 시기도 무사히 지나왔다고. 한 시기를 지나온 지금에야 나는 단순한 진실을 깨닫는다.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할 때에도 나는 사랑받고 있었음을. 그럴 때조차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 있었음을.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잘 태어났다고, 다시 힘을 내라고 따뜻한 밥을 챙겨 먹이는 마음. 그건 선물이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오래 간직해 온 선물을 꺼내볼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잘 살아보고 싶어진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