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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기술 전쟁 중… R&D 전략 오판은 치명적”

입력 | 2024-05-03 03:00:00

한국공학한림원 R&D 특별 포럼
경제안보 중시 주요국 경쟁 격화
대형 기술 위한 새 지원 절실
‘산업-기초연구 선순환’ 구축 필요




한국공학한림원(NAEK)이 2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호텔에서 개최한 ‘산업·기업 R&D 특별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동수 네이버클라우드 이사, 박성빈 LG에너지솔루션 기술전략담당, 김필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본부장, 양현모 전략컨설팅 집현 대표, 안현실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이병헌 광운대 교수, 안준모 고려대 교수,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최윤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세계 주요국들은 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천문학적인 지원금과 과감한 정책으로 반도체, 인공지능 등과 같은 첨단기술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지난해 산업기술 예산 축소를 경험한 공학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NAEK)은 2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호텔에서 ‘산업·기업 R&D 특별 포럼’을 열고 대기업을 포함한 민·관·학 협업 체제로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대형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공학한림원의 특별 포럼은 ‘선도형 혁신 생태계 육성을 위한 산업·기업 R&D 지원 방향’을 주제로 열렸다. 같은 주제로 기조발표를 한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래 먹거리가 될 기술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 기술이고, 이런 R&D는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감당하기 불가능한 위험이 있다”며 “세계적인 흐름도 산업기술 개발에서 국가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재정 지원을 확대하면서 민간 투자도 크게 끌어내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NAEK 산하 ‘산업·기업 R&D 지원 방향 연구 태스크포스(TF)팀’의 공동위원장을 안현실 NAEK 기술경영정책분과위원장과 함께 맡았다. 19명으로 구성된 TF팀은 이날 국가전략기술 개발 프로젝트 신설 등을 담은 7대 제언을 발표했다.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왜 산업기술 R&D인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기존에는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개발과 사업화 등이 단계적으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게임체인저가 돼 무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R&D와 사업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시대”라며 “핵심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정부의 과감하고 통합적인 R&D 지원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국제사회는 기술 확보 경쟁 격화로 선택적 국제 협력과 핵심기술 확보의 중요성, 기술력 중심의 글로벌 리더십 등을 골자로 하는 신산업정책이 부활한 상황이다”라고 소개했다.

양현모 전략컨설팅 집현 대표이사는 ‘한국 산업·기업 R&D 성과와 과제’ 발표를 통해 “그간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1980년대 조선과 가전, 1990년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000년대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주력 산업으로 키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 등으로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정책의 일관성 등이 부족했고, R&D를 신산업 창출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양 대표는 “역대 정부 대형 R&D를 보면 대기업의 참여가 있을 때 좋은 성과가 나왔지만 2017년 이후로 대기업의 참여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양 대표는 “2023년 정부 R&D 예산 삭감으로 산업 R&D 지원도 축소됐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직접 지원 축소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며 “그간의 성공과 글로벌 흐름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했다.

특별포럼의 패널로 참석한 학계와 첨단산업계 관계자들은 R&D를 하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건설적인 대안들을 제시했다.

이동수 네이버클라우드 이사는 민간 수요 중심의 연구개발을 강조했다. 그는 “엔비디아와도 파트너로 일하는데, 그들이 AI 서비스 기업의 수요를 맞춰 주려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며 “정부가 기업 수요와 어긋나는 중장기 개발 계획을 다 세워 놓으면 민간기업이 정확한 수요를 얘기하기도 힘든 만큼 정부가 AI 반도체를 의미 있는 국가 주력 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민간이 (대형 R&D 과제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제조 산업은 글로벌 톱이 됐다. 산업을 선도하는 입장에서 더 이상 원천기술을 해외에 의존하기 힘들다. 원천기술은 국내의 학교와 연구기관 등에 있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기업 R&D가 기초·원천기술을 견인하고, 기초·원천기술이 산업기술로 이어지는 ‘산업향 원천기술’을 활성화하는 선순환 기술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대한민국이 기술패권 시대에 퍼스트무버(선도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리스크가 있지만 성공하면 임팩트가 큰 선도형 융복합 R&D에 민관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한국공학한림원은 이를 위해 산업·기업의 목소리를 담아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더욱 충실히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