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심리] 가족 행복 위해 고생하며 재산 모았지만 현실은 달라
“네가 죽으면….” 지난 한 달 사이 이 말을 두 번 들었다. 몇 달 전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년이 안 되는 사이 이 말을 3번이나 모두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다. 내 나이가 이제 50대 중반이다. 어디가 특별히 아프거나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세상은 100세 시대라고 떠들어대는데 나는 50대 중반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네가 죽으면…”이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 기분이 참 안 좋다.
세자 책봉 제안에 극노한 선조
부자의 나쁜 점은 일찍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GETTYIMAGES]
조선시대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정철은 1591년 좌의정 자리에 있었다. 당시 동인과 서인으로 조정이 나뉘었는데, 정철은 서인의 우두머리였다. 1589년 동인 정여립의 난이 있었고, 정철은 이 반란 건을 처리하면서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됐다. 1591년 한창 권력의 정점을 누리던 정철은 왕인 선조에게 세자를 정할 것을 건의했다. 이때 선조는 만 39세였다. 적자는 없었고 임해군, 광해군 등 서자만 있었다. 정철은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자고 제안했다. 결과는 정철의 몰락이었다. 광해군을 세자로 하자는 정철의 제안에 선조는 크게 화를 냈고, 정철은 먼 강계 땅으로 귀양을 갔다. 최고 권력자가 한순간에 죄인이 돼버린 것이다. 이는 세자를 정하자는 말 때문이었다. 세자를 정하는 건 왕이 죽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선조는 자기가 죽는 것을 가정하고 대비하자는 말에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나는 선조가 속이 좁다고 비판했다. 적자가 있다면 따로 세자를 정하지 않아도 누가 왕이 될지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적자가 없고 서자만 있는 상황. 누가 세자인지를 정해놓지 않으면 선조가 갑자기 죽었을 때 왕권 계승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일에 대비해 누가 왕이 될지 미리 정해놓는 건 왕조 사회에서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걸 가지고 최고 권력자를 바로 귀양 보내버렸다.
“네가 죽으면…”이라는 말은 보통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나올 수 없는 주제다. 선조는 세자를 둬야 하는 왕이기에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말을 계속 듣게 됐을까. 돈 때문이다. 한 명은 재무관리 일을 하는 친구였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남겨진 유족들이 상속세, 재산분배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물어봤다.
“너는 준비하고 있나.”
“나? 나는 그럴 필요가 없지. 가진 게 없잖아.”
재산이 있으면 지금부터 사후를 준비해야 하고, 재산이 없으면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돈 때문에 그런 차이가 발생해도 되나. 그게 바로 돈 중심의 사고방식 아닌가.
다른 한 사람은 가까운 친지다. 나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재산이 어떻게 될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있었다. 내가 집 한 채 가지고 있거나, 모두 주식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어려울 게 없다. 그런데 내 투자처는 좀 다양하다 보니 굉장히 복잡하긴 하다. 나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런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부모의 재산
둘 다 나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네가 죽으면…”을 얘기한 건 아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복잡해지는 나의 가족 상황을 고려해서 한 말이다. 하지만 듣는 나로서는 굉장히 불편하다. 50대 중반 나이에 주변 사람들이 “네가 죽으면…”을 말하고 생각한다는 게 기분 나쁘지 않겠나.
그런데 의문이 하나 든다. 나에게 말한 이 두 사람은 내 상속자가 아니다. 상속자가 아닌데도 “네가 죽으면…”이라는 시나리오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상속자는 그런 생각을 안 할까. 당연히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겉으로 어떤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도 안 할까.
돈 때문에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건 정말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 큰돈은 사람의 사고방식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 몇천만 원, 몇억 원 정도 돈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십억 이상 돈이 걸려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 정도면 정말 생활이 변한다. 자기 생활이 크게 변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다.
또 이건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일이 아니다. 언제 발생하느냐 문제일 뿐, 분명히 발생할 일이다.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가장의 죽음을 그려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고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분명히 발생할 일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리가 없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앞으로 100% 발생할 일을 미리 생각해보고 대비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패륜아가 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등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일로 자신의 삶이 크게 나아질 경우 “그런 일이 빨리 발생했으면…”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재산 정리 빨리하기로 결정
상속으로 큰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본인, 당사자다. 그동안 고생하며 큰 재산을 만들었다. 자기의 행복과 가족의 평안을 위해 재산을 모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또 바라기까지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생각을 가까운 사람이 한다는 점이다. 바로 가족이, 자식이 그런 생각을 한다. 이건 비극이다. 돈 때문에 자식이 내가 빨리 죽기를 바랄 수도 있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조차 싫다.
물론 자식이 어리면 그런 생각은 안 할 것이다. 10대는 분명 그런 상상을 안 할 테고, 20대에도 안 할 것이다. 하지만 30, 40대가 되면 좀 달라질 수 있다. 이때는 부자인 가장이 죽었을 때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분명하게 알 테고, 그런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들 수 있다.
돈이 많은 부자가 됐을 때 나쁜 점은 무엇일까. 돈이 없을 때 나쁜 점은 많이 얘기할 수 있지만, 돈이 많을 때 나쁜 점은 그다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아주 치명적인 나쁜 점을 알게 됐다. 부자의 주변 사람들, 특히 부자와 가까운 사람들이 부자가 죽는 것을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가족 중에서 마음속으로나마 부자 가장이 일찍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재산 정리는 빨리 하는 게 나은 것 같다. 가장이 죽은 다음에도 큰 변화가 없어야 가장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장이 죽었을 때 크게 횡재하는 이들이 있다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을 수 없다. 나는 재산 정리를 빨리할 계획이다. 주위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내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는 건 정말 겪기 싫은 일이니까.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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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38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